배상열 지음 / 추수밭 / 432쪽 /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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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은 ‘징비록’과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전쟁의 전후 사정을 다시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역사저술가인 저자는 7년 전쟁의 결정적 장면을 포착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류성룡은 단순히 이순신을 천거한 사람이 아니라 백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애쓴 인본주의자였다”고 말한다. 류성룡은 겉벼 2000석을 명군에 바치려 했으나 콩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1000석을 덜어 굶고 있는 백성에게 나눠주고, 사역에 동원되지 않은 백성은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 해도 임의로 전쟁터에 끌고 나가지 않았다.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전쟁 막바지 명군과 왜가 강화를 맺으려 하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황제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결기를 보였다.
저자는 류성룡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의 정책과 ‘징비록’ 내용에 대해선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징비록엔 류성룡이 조총의 위력을 파악해 신립에게 경고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전쟁 전 쓰시마에서 진상한 조총은 바로 군기시(軍器寺)에 처박혔다”며 문신이 무신에게 무기의 위력을 경고했다는 기록에 의문을 제기한다. 적의 머리를 갖고 오면 신분을 따지지 않고 관직을 줬던 류성룡의 정책에 허점은 없었는지도 검증한다. 왜군은 근접전에 상당한 강점을 보였는데 정예군도 아닌 조선 일반 백성들이 줄줄이 들고 온 머리는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저자는 징비록 이후 광해군과 인조반정, 병자호란 직전까지 동아시아 정세의 전개 과정을 소개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란 두 번의 엄청난 전쟁을 치른 조선이 왜 다시 위기를 맞았는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