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 상황에서 꺼지지 않는 희망과 의지를 노래한 ‘암흑기의 별’ 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는 1904년 경북 안동에서 6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퇴계 이황의 후손인 친가와, 외가가 모두 항일에 몸담았다. 그의 작품 속 지사(志士)적 면모는 이런 가풍에서 비롯됐다. 교남학교(현 대륜고)에서 수학한 뒤 1925년 의열단에 가입해 항일 투쟁을 시작했다. 1927년 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처음 수감된 후 모진 고문을 당했다. 생애 그는 총 열일곱 차례의 옥고를 치렀다. 그의 이름은 대구형무소 수감생활 중 수감번호다.

1929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며 항일활동을 계속했다. 1932년 베이징 조선군관학교에서 장교교육을 받았다. 이 무렵 중국의 대문호 루쉰과 교유하며 지냈다. 1935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고 창작활동을 본격화했다. 언론사에 몸담으며 시 수필 시나리오 등을 발표했다.

1941년 폐병으로 요양하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활동을 계속했다. 1943년 6월 귀국한 뒤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돼 중국으로 압송, 베이징교도소에서 1944년 1월16일 생을 마쳤다. 대표작 ‘광야’는 그의 절명시로, 사후 이듬해 동생이 수습해 펴냈다. 그가 ‘절정’에서 갈구했던 강철로 된, 희망의 무지개가 올 한 해 많은 이에게 비치길 기원해 본다.

■ 이육사

1904년 5월 출생
1925년 의열단 가입
1930년 1월3일 등단
1939년 ‘청포도’ 발표
1944년 1월16일 순국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