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9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며 항일활동을 계속했다. 1932년 베이징 조선군관학교에서 장교교육을 받았다. 이 무렵 중국의 대문호 루쉰과 교유하며 지냈다. 1935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고 창작활동을 본격화했다. 언론사에 몸담으며 시 수필 시나리오 등을 발표했다.
1941년 폐병으로 요양하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활동을 계속했다. 1943년 6월 귀국한 뒤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돼 중국으로 압송, 베이징교도소에서 1944년 1월16일 생을 마쳤다. 대표작 ‘광야’는 그의 절명시로, 사후 이듬해 동생이 수습해 펴냈다. 그가 ‘절정’에서 갈구했던 강철로 된, 희망의 무지개가 올 한 해 많은 이에게 비치길 기원해 본다.
■ 이육사
1904년 5월 출생
1925년 의열단 가입
1930년 1월3일 등단
1939년 ‘청포도’ 발표
1944년 1월16일 순국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