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보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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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매년 11월 치르는 수능시험 날, 고3 자녀에게 엿을 주며 “먹어라!”고 한다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이 때 누군가는 시험을 잘 쳐서 ‘철커덕’하고 붙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엿 먹어라!’는 이와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약간 떨떠름하게 느낄 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립국어원 국어표준대사전에 따르면 관용구 ‘엿 먹어라’는 ‘(속되게) 남을 은근히 골탕 먹이거나 속여 넘길 때에 하는 말’로 풀이됩니다.

대사전은 친절하게도 “엿 먹어라 이 새끼야, 죽는 마당에도 군법 회의만 찾을 생각이냐?”란 문구를 예시하고 있고요.

이는 고 홍성원 작가가 1970년부터 5년간 ‘세대’지에 연재한 200자 원고지 1만매에 이르는 대하소설 ‘남과 북 [연재 당시 제목은 ’육이오‘]에서 출처한다는 설명입니다.

최근 들어 젊은 사람들이 “엿 먹어라”를 미국인들이 가운데 손가락을 펼치며 하는 욕설과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기도 하지요.

‘엿 먹어라’란 말이 이처럼 일상의 속어로 정착한 (?) 배경이 꽤 흥미로운데요. 아이러니컬 하지만 이의 유래도 ‘시험’이라는 게 정설로 꼽힙니다.

때는 지금의 중학교 진학 방식인 이른바 ‘뺑뺑이를 돌리는’ 추첨방식이 시행되기 전 1964년 12월. 딱 50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서울시 소재 한 일류 중학교의 입학시험에서 학부모들이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며 교문에 붙이던 ‘엿’과 관련한 선다형 문제가 출제됐습니다.

“다음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디아스타제 2. 꿀 3. 녹말 4. 무즙’.

출제자측은 이 문제의 정답으로 1번 디아스타제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4번의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문제. 출제에 일종의 오류가 발생한 셈입니다.

특히 이 시험에서 한 문제를 맞히느냐 마느냐로 당락이 좌우됐다는 얘기. 때문에 무즙을 정답으로 선택해 입학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의 부모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낙방생의 학부모들은 당시 무즙으로 만든 엿을 솥 째 들고 나와 “엿 먹어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결국 법정으로 비화되는 등 큰 사회 문제로 확산하기도 한 실정이었다 하고요.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 ‘무즙파동’이라는 말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낙방생들은 이후 법정의 판결로 구제됐다고 하네요. 무즙파동은 나중에 시행되는 중학교 무시험 전형의 단초로 작용했다는 후문입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16강전 진출에 실패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6월 30일 인천국제공항의 귀국 기자회견 자리에서 ‘굴욕적인’ 엿사탕 세례를 받았는데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 '너 땜에 졌어' 회원이 “국민의 뜻이다”며 포장한 엿사탕을 던진 것입니다. 이날 엿 세례는 “엿이나 드셔!”라는 의미로 해석됐지요.

엿사탕 세례에 대한 인터넷에서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사정이 그러하지만 “실망스런 대표팀 성적에 대한 최소한의 퍼포먼스”라며 이를 지지하는 댓글이 우세하다는 분석입니다.

반대로 “지나치다”며 이들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는 의견도 상당수에 달합니다. 아무튼 축구팬들의 모든 행동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를 계기로 ‘환골탈태’하길 바라는 기대로 여겨집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