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이왈종 화백의 판화 ‘제주 생활의 중도’.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이왈종 화백의 판화 ‘제주 생활의 중도’.
툇마루에서 두 사람이 술상을 사이에 두고 정담을 나눈다. 마당에는 개와 노루가 뛰놀고 참새가 마당가 연못에서 목을 축인다. 한국화가 이왈종 화백(69)의 그림 ‘제주생활의 중도’ 시리즈는 자동차, TV, 골프장 등 생활 주변 이미지들이 동식물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 화백을 비롯한 국내 중견·신인 작가들의 그림을 압축해 만든 뮤라섹(mulasec) 기법의 판화 작품을 큰 부담 없이 가볍게 골라 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9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에서 펼쳐지는 ‘메리 크리스마스, 꽃보다 그림-프린트 베이커리’전이다. 빵가게에서 빵을 고르듯 부담 없이 그림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 이름을 ‘프린트 베이커리’라고 붙였다.

유선태 씨의 ‘말과 글’.
유선태 씨의 ‘말과 글’.
이번 전시회에는 이왈종 박항률 주태석 유선태 정일 윤병락 강영민 윤위동 아트놈 정일 찰스장 하태임 함영훈 홍지연 권수현 정성원 유나얼 김은기 강석문 홍원표 홍지연 박형진 송영노 씨 등 중견·신진 작가 26명의 뮤라섹 판화 30여점이 걸린다.

뮤라섹 판화는 종이를 재료로 하는 기존 판화와 달리 화가의 그림을 피그먼트 안료를 사용해 압축한 다음 아크릴 액자로 만든 아트 상품. 추억의 옛 사진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아크릴과 알루미늄패널 사이에 넣고 압축 코팅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참여 작가들이 직접 고유번호(에디션)를 붙이고 사인도 했다.

침체된 미술시장의 대중화와 컬렉터의 저변 확대를 위해 작품값을 싸게 매겼다. 3호(27.3×22㎝)가 9만원, 5호 15만원, 10호 18만원, 20호는 38만원. 비싼 그림값 때문에 작품 소장을 망설였던 사람들이 연말연시를 앞두고 소액으로 작품을 사 가까운 이들에게 선물하거나 집안을 꾸밀 수 있는 기회다.

출품작들은 예쁜 구상화부터 팝아트, 추상화, 현대적인 한국화까지 망라해 현대미술의 프리즘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탐스럽게 영근 사과, 꽃밭에서 슬픈 표정을 짓는 토끼, 을지로의 새벽 풍경, 현란한 색띠 등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시적 감수성으로 그려낸 작품이 많다.

박항률의 그림 ‘꽃그늘’은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날아가는 나비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성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등산길에 이름 모를 꽃을 보고 멈춰 섰을 때의 고요함이 느껴진다. ‘사과 작가’로 유명한 윤병락의 그림 ‘가을 향기’는 과일가게 앞에 놓인 사과 상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표현했다. 색채와 사실적 질감을 살려 시각만이 아니라 후각, 촉각, 미각까지 담아낸 게 이채롭다. 고인이 된 탤런트 남성훈의 딸 권수현 씨의 작품도 나온다. 왕국의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성채를 배경으로 코끼리가 등장한 이 작품은 알록달록하고 불규칙한 모자이크 패턴 작업을 통해 긍정의 에너지를 표출한다.

‘극사실주의 대가’ 주태석 씨의 ‘자연 이미지’, 색띠로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하태임 씨(39)의 ‘한 토막(Un passage)’ 시리즈, 두 마리 공작새가 춤추는 모습을 잡아낸 홍지연 씨의 오방색 한국화 등도 관람객을 맞는다. (02)360-42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