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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아침] 위장술의 선구자가 된 화가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프란츠 마르크의 ‘붉은 말II’ (1911,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프란츠 마르크의 ‘붉은 말II’ (1911,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전장에서 적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위장을 해야 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한 독일 표현주의의 작가 프란츠 마르크(1880~1916)는 전투 현장에서 위장을 통한 은폐가 병력의 손실을 막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병에 배속된 그는 틈날 때마다 자신의 캔버스 커버에 마네부터 칸딘스키에 이르기까지 대가들의 그림을 그려 은폐의 효과를 실험했는데, 그중 정찰 비행기의 사격이나 폭격으로부터 생명을 지켜주는 데 가장 효과적인 그림은 칸딘스키 같은 추상화가의 작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기 전 칸딘스키와 함께 ‘청기사파’로 불리는 표현주의 운동을 전개했던 마르크는 형태와 색채의 표현성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지만 유독 말만큼은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에게 말은 영웅적 기상을 상징하는 고결한 정신의 요체로, 그는 말의 배경을 추상화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순수성을 드러내려 했다.

안타깝게도 마르크는 1916년 프랑스 남부 베르뎅 전투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던 중 적기의 폭격에 목숨을 잃고 만다. 전쟁은 어느 누구에게도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법이다. 은폐술의 대가도 전쟁의 재앙을 빗겨가지는 못했다. 우리가 평화를 갈구하는 이유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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