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운하 건설을 주도한 드 위트 클린턴이 1825년 완공식에서 이리호의 물을 허드슨 강 하구의 대서양 물과 합치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이리 운하 건설을 주도한 드 위트 클린턴이 1825년 완공식에서 이리호의 물을 허드슨 강 하구의 대서양 물과 합치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책마을] 물을 지배하는 자가 역사의 주인공 된다
“미국이 운하로 인해 통합된다면, 어느 곳에서도 저렴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상호 교류와 교역에서 비롯되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식한다면, 미합중국을 독립된 그리고 분리된 정부들로 갈라놓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미국의 기술자인 로버트 풀턴이 동부와 서부를 잇는 이리(Erie) 운하 건설을 추진하면서 한 말이다. 이리 운하는 새로 개척한 서부를 동부의 활기찬 산업지대와 이어줬고 통합된 시장을 만들어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육로로 32일이 걸리던 버펄로~올버니 간 거리는 운하가 개통되면서 8일로 줄었다. 운하 통행료는 1.6㎞당 4센트여서, 화물 운송 비용도 10분의 1로 줄었다. 터무니없는 운송비 부담이 사라지자 중서부지역에서 재배되는 곡물은 동부 해안지역과 유럽 시장을 빠르게 차지했다. 경제는 호황을 맞았고 이는 철도가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유력지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저술가인 스티븐 솔로몬은 《물의 세계사》에서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리 운하 건설 등을 통한 ‘물의 지배’를 꼽는다. 수자원 개발은 번영하는 문명의 증거이자 촉매제라는 설명이다. 이리 운하뿐 아니라 다목적 댐의 시대를 연 후버댐으로 미국은 세계적인 댐 건설 열풍을 이끌었다. 관개용수와 전기를 싸게 공급하면서 생산이 늘어났고, 홍수 조절 능력과 하천 항해술도 발전했다. 국가 주도하에 건설된 댐은 중앙집권의 명분을 제시했고 이는 미국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 힘이 국제적으로 발휘된 건 파나마 운하의 건설이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미국은 두 개의 대양을 경제·군사적 앞마당으로 삼았다. 바다의 중요성을 알게 된 미국은 해군력 증강에 힘을 쏟았고 미국의 영토를 태평양 등 세계로 확장한다는 철학인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실현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했다.

미국의 경우는 물을 지배함으로써 역사의 주인공이 된 수많은 사례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저자는 물이 강대국의 흥망과 국가 간의 관계, 정치·경제 체제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핵심 조건임을 역설한다. 중국이 당나라 때 황금기를 맞았던 것도 벼를 재배하는 남부 양쯔강 유역과 북부 황허 유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인 대운하를 수나라 때 완성한 덕이었다. 대양 항해는 서구가 세계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도록 했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한 공공위생 혁명은 영국의 세계 제패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유례 없는 인구 증가를 가능케 했다.

현재 인류는 물 부족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전체 물의 양은 엄청나지만 인간 문명에 필수적인 담수는 이 가운데 2.5%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3분의 2는 빙하 안에 묶여 있고 나머지 3분의 1의 대부분도 지하 호수 형태로 존재한다. 전체 담수의 0.003%만 지표면에 존재한다. 저자는 역사상 모든 사회의 운명은 대개 물 자원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고 말한다. 중국과 인도가 받고 있는 ‘물의 압박’은 세계적인 물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는 큰 문제다.

저자는 주석과 참고문헌을 합쳐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풍부한 사례로 힘 있게 이끌어 간다. 대중적 글쓰기로 유명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깔끔한 번역도 속도감 있는 독서를 돕는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던 물의 존재를 다시금 인식하게 하고 세상과 세계사를 읽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책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