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엄습한 1997년 말, 해외 금융정보 벤처기업에 근무하던 김종운 씨에게 정부 관계자가 연락해왔다. “당신이 개발한 해외 금융정보 서비스를 보니 마음에 드는데 한번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해당 고위 공무원은 “해외 동향 분석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다.

외환위기 전후만 해도 국제금융 동향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다.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어떤 게 요긴한 것인지 알기도 힘들었다. 정부나 금융기관·민간 기업 모두 정확한 정보의 갈증에 시달렸다. 이들에게 그날그날 생기는 세계 각국의 정보 가운데 금융 관련 내용을 엄선해 전달하는 게 필요했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에 ‘통찰력 있는 방향 제시’가 들어가야 했다.

김종운 넥스텔리전스 사장은 ‘앞으로 다양한 정책 분야에서 깊이 있는 해외 정보 수요가 점차 늘어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 동료 임직원 3명과 함께 독립해 여의도에서 넥스텔리전스를 창업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한항공 기획조사 부서에서 9년간, 벤처기업에서 해외 시장 분석 업무를 8년간 수행하는 등 총 17년간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지식서비스 수요에 주목한 것이다.

바로 해외 시장 조사 및 전략 제안이었다. 고객 요구에 맞춰 국내외 현황을 조사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밤샘과 주말 작업을 밥먹듯했다. 여러 언어를 다룰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그런 가운데 이 분야에서 작지만 경쟁력 있는 업체로 키워냈다.

이 회사의 고객은 △공정거래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환경부 중소기업청 등 국가기관 △산업기술진흥원 환경산업기술원 연구개발특구본부 등 정부 산하 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 정부 출연 연구기관 및 국내외 기업을 포함해 30여곳에 이른다. 왜 기라성 같은 기관들이 넥스텔리전스에 조사를 의뢰하는 것일까.

첫째, 깊이 있는 현장 중심 조사다. 예컨대 ‘독일의 가업승계 제도’는 아주 전문적인 분야다. 가업승계 정책과 상속세 변화, 관련 법령 및 판례 등 다양한 자료를 분석한 뒤 한국의 경우 어떤 식으로 가야 하는지 기초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경영 법, 그리고 현지의 특수한 문화도 언급해야 한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같은 정책이라도 환경이나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성과를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박사 3명, 석사 5명을 비롯한 10명의 베테랑 연구원을 두고 있다. 우선 김 사장 자신이 이 분야에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종사해온 경력을 갖고 있다. 오상훈 부사장은 국내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KDI에서 거시경제 분야를 13년간 담당했고 중소기업연구원을 거쳐 SK증권 리서치센터 임원을 지냈다. 창업 멤버인 김철환 연구위원(연세대 경제학 박사)은 대기업 연구소 등에서 20년 이상 산업연구를 담당했다. 한동훈 연구위원(미국 유타대 공학박사)은 정부 부처, 대기업 등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산업기술정책 전문가다. 박수일 연구위원(미국 위스콘신대 MBA)은 해외 동향 분석 업무에 15년 이상 종사하고 있으며, 이상용 연구원(미국 컬럼비아대 공학석사)은 벤처캐피털과 기술사업화 분야에서 10년 가까운 경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학문적 접근보다는 현장 중심형 조사를 통해 실천적 전략을 제시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둘째, 글로벌 네트워킹이다. 이 회사는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획득한다. 선진국 주요 언론매체를 비롯해 법령, 의회 정보, 통계, 신기술 정보 등 광범위한 정보원을 추적한다. 이를 위해 영어 일어 중국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의 정보를 수집 분석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김 사장은 “국내 대형 연구기관에서도 이렇게 폭넓은 정보를 다룰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이 회사는 베이징 동유럽 중앙아시아 중남미 등 7개 거점 지역에 통신원을 두고 있다. 해외 30여개국에 협력망도 구축했다. 이를 통해 필요 시 현지 오프라인 조사를 병행한다.

셋째, 산·학·연 협업체계다. 과제 성격에 따라 대학, 연구소, 시스템 개발업체 등과 공동으로 수행함으로써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삼성SDS, 신세계I&C, SKC&C 등 대형 시스템 개발업체와 공동으로 다수의 정책정보 포털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대학과 연구소 주도로 진행하는 대형 정책연구 과제에 여러 번 참여했다.

이런 강점들을 바탕으로 그동안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한 연구만 해도 200여건에 이른다. 실제 국가정책으로 연결된 것도 여러 건이다. 중소기업 규제 영향평가 제도나 옴부즈맨 제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창업 10년을 넘긴 김 사장은 재도약을 구상하고 있다. 해외 시장 개척이다. 영국 글로벌정보 분석업체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김 사장은 “글로벌 시장 정보는 미국과 영국의 민간 정보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한국 중국 일본에 대한 정보는 아직 취약해 개발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의 정책과 시장에 대한 외국의 관심 또한 부쩍 많아지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페루와 파나마 정부 고위급 관료들을 대상으로 아시아 시장 진출 전략에 관한 연수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했다.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 본사로부터 국내 투자 확대를 위한 시장 조사를 의뢰받아 수행 중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이제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경제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지역”이라며 “이들 3개 국가의 정책 동향에 관한 특화 정보 서비스를 개발해 해외 시장을 공략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