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이제 죽는다. 그러나 국가는 영원하리라.” ‘절대왕정의 대명사’ 프랑스 루이 14세가 남긴 유언이다. 72년간 나라를 통치하며 절대군주로 군림했던 루이 14세. 17세기 후반 중상주의를 통해 프랑스를 유럽 최강국 반열에 올려놨지만 의회 무력화, 신교도 박해 등으로 80여년 뒤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1638년 태어난 그는 ‘옥동자’였다. 23년 만에 태어난 왕자였다. 그러나 다섯살 때 부왕 루이 13세의 사망, 그리고 예상치 못한 즉위와 함께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추기경 마자랭을 재상에 임명, 보필받았지만 9세 때 일어난 ‘프롱드의 난’을 피해 6년 가까이 각지를 유랑했다. 23세 때 마자랭이 죽자 재상제를 폐지하고 왕권 강화에 나선 배경이었다. 귀족 등의 권한을 줄이고 부르주아 상인들을 중용했다. 예술가를 후원해 왕을 칭송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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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압정의 종착역은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수십만명을 동원해 20년 만에 완공한 궁전은 왕의 놀이터였다. 연일 호화 파티가 이어졌다. 낭트칙령을 폐지하며 개신교를 압박, 상공업자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나라 살림마저 흔들렸다.
봉건제를 폐지하고 근대국가 틀을 다진 루이 14세. 두통 통풍 등에 시달리다 증손자 루이 15세에게 “나를 닮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77세로 세상을 떴다. 297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