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이중성 녹여낸 설치작품 40여점 선봬
토레스의 아시아 첫 회고전이 21일부터 9월28일까지 ‘더블(Double)’이란 주제로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펼쳐진다.
쿠바 태생으로 1979년 뉴욕으로 이주해 뉴욕대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공부한 토레스는 1988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에이즈로 고통받으며 겨우 10여년 활동한 불운의 미술가. 난민이자 유색인종, 동성애자로 살아가면서도 주류 미술계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보했다. 60회에 가까운 개인전과 700회가 넘는 그룹전에 참가한 그는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며 현대미술의 ‘신화적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이번 전시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한 세계 유명 미술관, 개인 소장가들이 빌려준 대표작 44점이 걸린다. 플라토 전시장은 물론 리움, 삼성생명 서초타워, 서울 시내 옥외 광고판에도 배치해 ‘반복’과 ‘복제’를 통한 ‘영속성’을 담보하려는 작가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는 쓸쓸하고 정적이지만 영원한 사랑의 미학이 배어 있다. 1991년 작 ‘무제(플라시보)’ 시리즈는 500㎏의 사탕을 바닥에 흩뿌려 놓은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사탕을 가져갈 수도, 즉석에서 맛볼 수도 있다. 사탕 더미가 서서히 소진되는 과정을 통해 죽음 앞에서 변모하는 육체를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관람객들은 혀 끝으로 사탕을 녹이면서 못다한 사랑을 더듬어 볼 수 있다.
토레스의 예술적 운명은 연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지만 사회적인 파급력은 대단하다. 병마로 인해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의 삶은 그 자체가 주류 사회의 변방, 즉 ‘타자’였기 때문이다.
소통의 흐름이 꽉 막힌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드러낸 토레스가 쌍, 이중, 변주, 표리, 주름, 역주행, 분신 등 다양한 이중적 의미를 형상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둥근 벽시계, 거울, 커튼, 베개, 인형, 고양이, 새, 꽃, 과일, 의자처럼 커플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다루며 애틋한 사랑에 대한 장치로 활용했다.
두개의 벽시계를 나란히 건 작품 ‘무제(완벽한 연인들)’는 서로 닮은 두 물체를 통해 동성애적 욕망과 금기를 암시한다. 사랑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이라는 이면에 사회적 터부를 드러낸 것이다.
홍라영 리움 총괄부관장은 “토레스의 작품은 아름다움과 애처로움, 행복감과 비극을 동시에 느끼게 해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때로는 달콤한 낭만으로 다가온다”며 “잠자리에 들 때, 풍경을 바라볼 때, 조명등을 켜거나 시간을 확인할 때, 사탕을 먹을 때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료 3000원. 1577-759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