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리느냐 버티느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기술의 90%를 차지하는 옆굴리기에는 지렛대의 비밀이 숨어있다.

레슬링은 인간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 한 곳에 모아 쓰는 능력으로 승부하는 종목. 허리와 복부, 허벅지 등에서 나오는 코어 근력으로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게 승부의 관건이다. 그레코로만형 66㎏급 국가대표 김현우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경기 때마다 모든 선수를 무릎까지 들어올리며 옆굴리기에 성공, 빼어난 힘과 세계정상급 기술을 선보였다.

옆굴리기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선수를 보면 지렛대의 원리를 잘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다리를 상대방 몸 아래에 끼워넣고 단단하게 고정시켜 튼튼한 받침점으로 삼는다. 상대의 가슴 부근에 걸어놓는 팔은 힘을 직접 쓰는 힘점이고, 힘을 발휘하는 작용점은 상대방의 무게 중심이 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에서 레슬링을 담당하고 있는 최규정 수석연구원은 “공격자는 상대방의 무게 중심을 파악하고 타이밍을 뺏으려고 혼신의 힘을 쏟는다”며 “이에 맞서는 수비자는 자세를 낮추고 넓게 버티면서 몸의 중심을 지속적으로 옮겨 공격자가 제대로 잡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공격자는 수비자의 무게 중심을 확실히 확보할 수 있도록 허리보다 겨드랑이를 파고든다. 수비자는 팔을 옆구리에 딱 붙여 공격자의 손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방어하며 무게 중심을 계속 바꾸면서 공방전을 벌인다. 레슬링에서는 공격력을 기르기 위해 당기는 힘을 키우는 연습에 집중한다.

체급경기인 만큼 체중 조절도 중요하다. 계체량이 경기 전날 오후 5시께 실시되기 때문에 선수들은 다음날 오후 1시의 시합 전까지 감량 이전의 평소 체중으로 돌리고 체력을 빨리 회복하는 데 집중한다. 최 수석연구원은 “레슬링 선수들은 경기가 있는 날 5~6시간 동안 4경기를 뛰기 때문에 엄청난 열량을 소비한다”며 “계체량 이후 수분 섭취에 집중한 뒤 죽이나 바나나 등 위에 부담이 없는 탄수화물 중심의 음식을 먹어 체중과 체력을 회복한다”고 설명했다.

체육과학연구원은 이외에도 선수별로 맞춤형 근력 강화운동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또 금메달을 놓고 경쟁할 톱클래스 선수들의 주요 기술과 습관을 분석해 상대별 전략을 세워 선수와 코칭스태프에 제공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선 바뀐 룰을 유심히 봐야 한다.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선수들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바꿨다. 경기 방식을 2분씩 3회전(2선승제)으로 바꿨기 때문에 승부가 막판에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점수에 따라 그라운드 경기 시간도 늘렸다. 그레코로만형에서는 각 라운드마다 스탠드 자세로 1분30초를 겨루고 30초는 그라운드 경기를 진행한다. 그라운드란 수비자가 파테르(매트 중앙에 두 손과 무릎을 대고 엎드리는 것) 자세를 취하고 공격자가 수비자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채 경기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형에선 한 라운드가 0-0으로 비기면 30초의 추가시간 동안 클린치 경기를 치른다. 클린치 경기에선 추첨을 통해 공격자가 수비자의 발을 잡고 점수를 얻기 위한 총력전을 펼친다.

레슬링은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핵심 종목이다. 1948년 런던올림픽부터 24년간 ‘노골드’에 그쳤던 한국은 양정모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올림픽에서 7회 연속 금메달(불참한 모스크바올림픽 제외)을 선사했다. 런던올림픽에선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정지현을 비롯해 최규진 김현우가 그레코로만형 경량급에서 금메달을 한 개 이상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한경·국민체육진흥공단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