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풍요는 도덕적 타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17세기 네덜란드가 그랬다. 동인도회사가 식민지로부터 거둬들인 엄청난 부는 삶의 질을 높여줬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을 감각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 배경이 됐다. 남녀관계의 문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중산계층의 탈선은 너무나 흔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정도였다. 매춘업도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암스테르담에서는 홍등가가 천연덕스럽게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기도 했다. 매춘업이 얼마나 성행했던지 금욕의 상징인 교회의 담장을 포위할 정도였다.

교회지도부와 윤리학자들이 도덕의 고삐를 바짝 조였음은 물론이다. 이 남성우월주의자들은 유부녀의 탈선을 훈계하고 처녀의 순결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이상일 뿐이었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탈선은 음성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당대의 소송문건에 혼외정사와 관련한 내용이 많은 것은 당시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기혼남녀의 ‘묻지마’ 만남을 주선하는 ‘부킹맨’들이 암약했고 최음제의 일종인 사랑의 묘약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런 사회의 타락상은 화가들에게 흥미로운 소재거리가 됐다. 돈이 되는 사업이었음은 물론이다. 뚜쟁이의 호객하는 모습, 매춘의 현장이 그렇게 해서 적나라하게 화폭에 그려졌다. 그렇지만 이런 달콤한 사랑에 대한 유혹을 델프트의 얀 베르메르(1632~1675)만큼 품위 있게 묘사한 작가는 없었다.

‘진주 귀걸이 소녀’와 ‘델프트 풍경’으로 유명한 이 작가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비단제조업자이자 여관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스물한 살 때 델프트의 예술가 조합인 성 루가 길드에 가입했고 이듬해 카타리나 볼네스와 결혼한다. 신부는 부유한 이혼녀인 마리아 틴스의 딸로 베르메르는 그와의 사이에 14명의 자녀를 둔다. 결혼 초기에는 아버지가 1641년 매입한 메헬렌호텔을 운영하며 그곳에서 살았는데 이 호텔은 델프트의 상류층과 부유한 부르주아가 주로 애용한 곳으로 베르메르는 이곳에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교유했다.

1660년에는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부대’를 이끌고 장모의 집에 들어간다. 그는 공적인 문서에는 자신을 화가라고 표시했지만 실제로는 화상 일에 더 매진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다른 화가의 그림을 팔아 남긴 수입이 더 짭짤했기 때문이다.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붓을 든 것은 고단한 낮의 삶을 끝내고 남은 저녁의 자투리 시간과 주말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1년에 두 점 정도밖에 그릴 수 없었고 그나마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후원자들의 주문에 부응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베르메르라고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지 않았을리 없었다. 그가 남긴 그림들을 보면 그야말로 연애에 빠삭한 존재처럼 비친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늘 바쁜 생활에 쫓겨 한눈 팔 틈이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도 그가 화폭에 표현한 은밀한 사랑은 마치 자신이 경험이라도 한 것들인 양 리얼하고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메헬렌호텔에서 그들의 일탈적 삶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여인과 두 남자’는 그런 일탈적 사랑을 경계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다. ‘사건’의 무대가 어딘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어느 부유한 저택의 실내처럼 보인다. 방의 한가운데는 화려한 차림새의 한 젊은 여인이 술잔을 들고 있다. 그의 왼쪽에는 한 남성이 음흉한 눈초리로 여인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술을 마시라고 권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최음제인 ‘사랑의 묘약’을 탄 술이다. 여인은 필시 이 남자로부터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받고 이곳에 온 듯 한데 아직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관람객을 향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고 있는 표정이다.

술 권하는 남자는 유부남과 유부녀의 만남을 은밀히 주선하는 뚜쟁이임에 틀림없다. 그 점은 그의 뒤쪽 창문가에 앉은 또 다른 남자의 존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여인의 파트너가 될 남자다. 이미 웬만큼 취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 친구의 모습이 좀 침울해 보인다. 그건 사랑의 묘약이 갖고 있는 효능과 관계 있다. 묘약은 폭풍 같은 사랑의 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때때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노르베르트 슈나이더, 2005). 두 ‘묻지마’ 파트너의 사랑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또 있다. 여인의 뒤쪽 벽에 걸린 초상화 속 인물이 그녀를 감시하듯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부재 중인 여인의 남편으로 보인다. 그는 ‘모종의 사태’가 발생하면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뛰쳐나와 칼을 휘두를 태세다. 이 빗나간 만남의 성사를 결정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반쯤 열린 유리창에 새겨진 이미지다. 네잎 클로버 모양의 이 유리그림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여신 템페란티아(Temperantia)를 그린 것으로 절제의 미덕을 상징한다. 그의 손에는 정의를 상징하는 직각자와 욕망의 절제를 상징하는 굴레가 들려 있다.

결국 사태는 한바탕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게끔 예정된 셈이다. 여인의 얼굴에 서린 야릇한 표정은 불발로 끝날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유혹을 떨쳐낼 자신에 대한 대견함일까.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도니제티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

베르메르의 그림 ‘여인과 두 남자’ 속의 사랑이 가벼운 일탈적 사랑이라면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진실한 사랑에 대한 얘기다. 둘 다 사랑의 묘약이 중요한 매개체지만 그 쓰임새는 천양지차다.

‘사랑의 묘약’은 ‘루치아’와 함께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2막짜리 희극적 오페라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벌어지는 네모리노와 아디나의 러브스토리. 마을 최고의 미녀 아디나를 짝사랑하는 네모리노는 아디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엉터리 약장수로부터 가짜 사랑의 묘약을 사 마시지만 되레 오해만 부르게 되고 아디나는 자신에게 청혼한 하사관과 더럭 결혼을 허락해 버린다. 뒤늦게 네모리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디나는 기지를 발휘, 약혼을 파기하고 사랑을 쟁취한다.

베르메르의 진짜 묘약은 불발로 끝났지만 도니제티의 가짜 묘약은 사랑의 완성을 위한 훌륭한 매개체가 됐다. 가짜 묘약은 물리적 효험은 없었지만 그 약이 사랑을 이루게 해주리라는 믿음을 줬다는 점에서 묘약은 묘약인 셈이다.

오페라 2막에서 네모리노가 아디나에게 자신의 사랑은 변함없다고 말하자 아디나가 눈물을 흘리는데 이를 본 네모리노가 불멸의 명곡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부른다. 이 애절한 아리아를 듣고 울컥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목석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ㆍ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