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은 사격 골프 등과 더불어 심리적 요인이 큰 종목이다. 심리적 안정감을 어떻게 찾느냐에 따라 올림픽 메달의 색깔이 결정된다.

양궁 대표팀도 훈련 때 첫 슈팅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올림픽 경기방식이 세트제로 바뀌면서 첫 화살로 높은 점수를 받은 선수가 승리한 게 70%를 넘는다. 대표팀이 첫 번째 화살을 쏠 때 10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궁 종목은 오래 전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스포츠심리학을 활용해왔다. 상대방을 반드시 눌러야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1 대 1 토너먼트에서 상대의 결과를 보고 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양궁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숙 연구원은 “상담 결과 선수들이 가장 긴장하는 때는 경기 전과 사선에 서기 전”이라며 “라이벌이나 자신보다 강한 선수와 맞붙게 됐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 불안해하면서 심장박동수도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불안감을 느끼면 머리 속에서 처리하는 정보의 양이 줄어들어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스트레스, 자신감·승부욕·집중력 상실 등은 판단력 저하, 창의성 약화라는 전술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이 같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비법이 스포츠심리학에 있다. 시합 전이나 시합 중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루틴’을 활용한다. 루틴이란 선수들이 습관적으로 일정하게 하는 동작이다. 김 연구원은 “루틴은 시합의 부담감 속에서 중요한 사항을 빠뜨리지 않게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며 “평소에 습관적인 동작을 개발하고 훈련하면 불확실한 상황을 줄이고 자신감과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에 ‘프리샷루틴’이 있다면 양궁에는 ‘프리슈팅루틴’이 있다. 작년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체육과학연구원은 대표선수들에게 상담을 통해 프리슈팅루틴을 만들어줬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 A선수의 프리슈팅 루틴은 ①“나는 할 수 있다”를 마음 속으로 외치고 ②뒤팔을 당긴 뒤 ③심호흡을 크게 한 다음 ④과녁의 중심에 화살이 꽂히는 상상을 하는 순서로 짜여져 있다. 이 같은 프리슈팅루틴은 매번 화살을 쏘기 전 반복해 이전 슈팅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 슈팅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연구 결과 남자 선수들의 자신감을 올려주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크게 증가했다.

최근에는 프리슈팅루틴의 개념을 더 확장한 멘탈플랜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시합 전뿐만 아니라 시합 중과 후까지 모든 상황을 고려, 최고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지켜야 할 핵심사항을 미리 계획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경기를 이끌기 위해 생각, 이미지, 단서, 그림, 동작 등을 포함시킨다.

대표팀 선수들은 올림픽 경기장과 똑같은 상황을 3차원(3D)으로 재구성한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면서 훈련하고 있다. 선수촌에서 버스로 이동해 경기장에 들어가서 수많은 관중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10점을 맞히는 영상을 소리까지 동원해 현실감 적응훈련을 한다. 여기에 맞춰 훈련하다 보면 실제 경기장에서 시합하는 것과 비슷한 근육 움직임이 나오기도 한다.

예년처럼 야구장의 많은 관중 앞에서 실전과 같은 연습도 할 계획이다. 이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해온 훈련법으로 5월 중순께 서울의 야구장에서 실시할 방침이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