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은둔자'라는 직업
명나라 말기의 문인 진계유(陳繼儒)는 무늬만 은둔자였다. 벼슬아치도 아니면서 고관대작의 저택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우연히 그 현장을 목격한 여섯 살배기 신동이 “미공(眉公·진계유의 호)은 사슴을 타고 전당현(소주)에서 물품을 구걸하네”라며 보기 좋게 한 방 먹였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민망하게 비칠 정도로 당시의 은둔자는 지조와 청빈의 대명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림이 있는 아침] '은둔자'라는 직업
명청대에는 유난히 은둔자가 많았다. 정치적 유력자들은 은자와 교유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고 은자는 그런 관계를 통해 물질적 후원을 얻어냈다. 은자는 잘만 처신하면 꽤 괜찮은 직업이었다. 나빙(羅聘·1733~1799)은 은자의 이미지를 활용하려는 사대부들의 심리에 편승, 은둔 문인들의 삶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가 한몫 단단히 챙겼음은 물론이다. 본래의 순수한 뜻은 사라지고 껍데기가 판치던 사회. 혹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은 아닐는지.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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