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교과서는 모든 것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미술의 역사적 흐름과 장르를 설명하는 데는 과잉 친절을 베풀지만 그것이 나타나게 된 사회 · 경제 · 문화적 배경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교과서가 외면한 흥미로운 미술 이야기들을 통해 미술이 인간사회와 맺어온 문화의 씨줄과 날줄을 더듬어본다.

그림은 누가 최초로 발명했을까. 로마의 사상가이자 과학자인 플리니우스(23~79)가 《박물지》를 썼을 때만 해도 이 문제를 두고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서로 자기들이 먼저라고 아옹다옹해댔다. 물론 '가재는 게 편'이라고 당연히 로마인 플리니우스는 그리스 편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 영광을 시키온(Sikyon)의 도공 디부타데에게 돌렸다.

내용은 이렇다. 도공의 과년한 딸이 코린트의 한 청년을 사랑했는데 그가 전쟁에 나가게 돼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그가 저세상 사람이 되더라도 영원히 추억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애타는 갈구가 통했던 것일까. 그녀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만남의 날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벽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목탄으로 그렸다.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그것을 석고로 떠서 굽게 했다.

플리니우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녀의 추억하고자 하는 욕망,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죽음)에 항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회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봤다.

플리니우스보다 20여년 늦게 태어난 쿠인틸리아누스는 선배의 기록을 좀 더 다듬어 '그림은 몸에 비친 태양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포착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림자를 만들어낸 주체를 실내조명(등불) 대신 태양빛으로 바꾼 것이다. 태양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었을까. 그의 새로운 정의는 이후 많은 공감을 얻는다. 특히 빛의 원리에 입각한 과학적 명암법을 신봉한 르네상스 대가들에게 쿠인틸리아누스의 정의는 플리니우스의 그것보다 훨씬 과학적으로 비쳤다. '그림자 모사설'은 그렇게 대가들의 지지를 업고 오랫동안 그림의 기원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2000여년 동안 철석같이 믿었던 '회화는 그림자의 윤곽을 그린 데서 탄생했다'는 설은 20세기에 들어와 폐기 처분의 운명을 맞는다.

제인 해리슨(1850~1928) 같은 신화학자는 예술은 고대인들이 자신들의 숭배 대상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탄생했다고 보고 그리스 시대에 무수히 제작된 신상을 그 근거로 들었다.

'그림자 모사설'의 종말을 가속화한 것은 원시 동굴 벽화의 발견이었다. 알타미라 · 라스코 동굴의 벽에 그려진 수많은 야생동물은 코린트 도공의 솜씨를 무색하게 했다. 그 생생한 묘사를 낳은 저변에는 많은 사냥물을 포획하고자 하는 원시인들의 욕망과 종족 번성의 기원이 담겨 있다.

이제 곰브리치의 《미술 이야기》(국내에선 '서양미술사'라고 번역됐다)를 비롯한 대부분의 미술 입문서는 그림의 기원을 더 이상 그리스 시대의 '그림자 모사설'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나 회화 탄생의 기점이 시대에 따라 변했더라도 그 밑바탕에는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간에 시대에 따른 인간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욕망의 분출을 경계한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 욕망은 곧 예술 탄생의 힘이 됐던 것이다.

정석범 문화 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