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쫓기듯 쇼팽을 연주했다면 30대가 된 지금은 아름다운 선율에 행간과 여백까지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

피아니스트 임동민 씨(계명대 교수 · 31)는 클래식 팬들 사이에서 '쇼팽 전문가'로 불린다. 1996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청소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쇼팽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2위 없는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쇼팽 전문가라는 틀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한정시키지 않았다. 2008년에 출시한 1집 음반으로 베토벤 소나타집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가 오는 30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2집 쇼팽 앨범 발매기념 피아노 리사이틀을 통해 다시 쇼팽을 연주한다. 콩쿠르 이후 공식석상에서 쇼팽을 연주하는 것은 6년 만의 일이다.

"저는 쇼팽 전문가가 아니에요. 다만 다른 작곡가보다 쇼팽을 더 좋아했고 로맨틱한 점이 저와 통하는 부분이 있어 많이 연주했을 뿐이죠.남들보다 잘 친다고 생각지도 않아서 한동안 공식석상에서는 쇼팽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단지 한 음계 한 음계 흉내내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제 방식대로 여유를 갖고 음미할 수 있게 된거죠."

연주회의 부제는 '로맨틱 이고이스트'다.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인 쇼팽의 진가를 보여주겠다는 의미에서 로맨틱이라는 단어를,독창적인 해석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이고이스트라는 단어를 붙였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기보다 제 스스로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걸 좋아해요. 어릴 적부터 그랬어요. 언변이 세지는 않지만 누구와 논쟁해도 지지 않으려는 성격이거든요. 가끔 진 것 같으면 밤에 전화해서 다시 토론을 하기도 했죠.쇼팽 연주에서도 정형화되지 않은 독창적인 느낌을 전하고 싶어요. "

이번 연주회에서는 앨범에 담긴 쇼팽의 녹턴 55중 2번과 바르카롤(뱃노래),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한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도 들려줄 계획이다.

"바르카롤은 쇼팽 말기 곡인데 정말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쇼팽다움'을 제대로 표현한 곡이에요. 세상에 쇼팽의 작품이 단 한곡만 남아야 한다면 바르카롤이어야 할 것입니다. '전람회의 그림'은 국내 초연인데 과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시절 준비했던 레퍼토리죠.예전부터 한국 무대에서 선보이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

내달에는 중국에서,12월에는 일본에서 연주회를 열 예정이다. 그는 제자들을 키우는 데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피아노는 항상 어려워요. 지인들은 제가 피아노 연습을 하고 나오면 마치 동굴에서 나온 것 같다고 해요. 그만큼 사력을 다하기 때문이죠.그나마 예전에는 하루 종일 연습만 하고 지냈지만 지금은 놀기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가끔씩 술도 한잔해요.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달라진 부분이죠.그런 삶의 변화가 제 연주와 곡 해석에 묻어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제 레퍼토리도 늘리면서 즐거움을 찾을 거예요. 인생도 예술도 따로 갈 수 없는 것이니까요. "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