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79)은 8일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저서 《하느님의 길,인간의 길》 출간에 즈음해 기자들을 교구청 집무실로 초청한 자리에서다. 정 추기경은 해마다 자신의 세례명으로 정한 니꼴라오 성인의 축일(영명축일)에 맞춰 저서나 번역서를 출간해왔다. 지난 6일 출간된 이 책은 저서로는 36권째,번역서를 포함하면 49권째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과 예언자들을 통해 지도자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통일국가의 왕이 3명,남북으로 분열된 후 남쪽 왕 20명,북쪽 왕 19명 등 모두 42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그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하느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는 경우가 흔했어요. 그럴 때 하느님은 예언자를 보냈는데 그런 사명을 띤 예언자는 왕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왕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죠.저 역시 왕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 지도자 자리에 있으니까 이런 사례에서 배울 것이 있겠다 싶어 책을 쓰게 됐어요. "
최근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종교갈등도 도마에 올랐다. 정 추기경은 "종교갈등은 각자의 욕망이 진리를 흐리게 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며 "그릇된 욕망을 극복하고 진리의 광명 속으로 들어서면 영생을 지향하는 종교끼리 다투겠느냐"고 반문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어요. 예수님이 바로 길이고 그 길로 가면 진리에 이르며,진리를 터득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죠.따라서 최고의 가치는 생명이고 그 다음이 진리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진리를 어기고 허위로 살면 동물 수준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생을 허위 속에서 허덕이며 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 영향이 자기한테만 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도자들이 그러면 그 영향권 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어둡고 불행해져요. "
화제가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남북관계로 넘어가자 정 추기경의 얼굴은 침통해졌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생존,진리,자유의 세 가지 중 북쪽은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그러나 "북한 정권과 백성은 구분해서 대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다가오는 성탄의 의미를 묻자,인류공동체에 좀 더 관심을 갖기를 호소했다.
"예수님은 만민을 위해 오셨으니 소외된 이,장애인,차별당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때가 바로 구세주가 임하시는 그 때 아니겠습니까. 크리스마스는 구세주가 오신 것을 축하하는 동시에 앞으로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대로 맹수와 그 먹잇감 동물들이 차별 없이 함께 어울려 노는 곳이 구세주가 바라시는 평화의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이걸 가르쳐 주러 오셨고요. 그 뜻대로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