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흙에 대한 착취가 로마제국을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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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이수영 옮김|삼천리|384쪽|1만9000원
카리브 제도의 히스파니올라섬 서쪽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티공화국.아이티는 아라와크라는 토착언어로 '초록섬'을 뜻하지만 실상은 전혀 딴판이다. 미국 국제개발기구는 1986년 아이티 면적의 3분의 1가량이 몹시 침식돼 사실상 흙이 사라진 불모의 땅이라고 보고했다. 유엔은 아이티의 절반이 넘는 곳에서 겉흙이 심각하게 사라져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
지형학자인 데이비드 몽고메리 미국 워싱턴대 지구과학부 교수는 아이티의 심각한 토양침식이 적어도 17세기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17세기 말 프랑스는 아프리카 노예를 수입해 이 섬에서 목재를 채취하고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식민지 시대에는 고원에서 이뤄진 커피와 인디고 플랜테이션 탓에 대규모 침식이 일어났다. 1804년 노예 반란으로 공화국을 건설한 뒤에도 가파른 비탈에서 경작을 한 탓에 나라의 3분의 1이 헐벗은 바위 비탈로 변했다.
그 결과 아이티의 번영도 사라졌다. 농지가 줄어들자 시골 가정에서는 마지막으로 남은 나무들을 베어 숯을 만들어 팔고 먹을거리를 샀다. 궁지에 몰린 소작농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거대한 빈민촌을 이뤘고,2004년 정부를 무너뜨린 폭동의 기반이 됐다.
몽고메리 교수는 《흙》에서 이 같은 사례를 들며 흙에 대한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 그에 따르면 어딜 가나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게 흙이라고 다들 생각하겠지만 흙은 석유나 광물처럼 유한한 자원이다. 따라서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생산 및 파괴활동으로 흙이 침식 · 유실되는 속도가 빠르면 흙은 다른 자원들처럼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는 유사 이래 번영 · 쇠퇴했던 고대 수메르문명과 그리스 · 로마 문명,고대 중국 · 마야 문명,현대문명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명은 흙의 건강상태와 함께 했다고 주장한다. 인류가 발전시킨 문명과 기술은 예외 없이 흙에 기반했고,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식량 공급을 위해 흙을 지나치게 착취함으로써 결국 문명 자체를 시들게 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마제국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제국이었던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부패,국가기구 비대화,기독교의 대두,외세 침략,납 중독 등 수많은 가설을 놓고 역사가들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 몽고메리 교수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은 다름 아닌 흙의 침식과 토질 악화 때문"이라는 주장을 보탠다.
한니발이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이탈리아 지역을 섬멸하자 밭과 집을 잃은 농부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주인이 없는 농지는 부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가 됐다. 이후 부자들이 경영하는 대농장(라티푼디움)이 로마 전역으로 확대됐고 토질이 급속히 악화됐다. 결국 로마는 한순간에 무너진 게 아니라 침식이 땅의 생산성을 떨어뜨림에 따라 시들어갔다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 남부 평원의 더스트볼,1970년대 아프리카 사헬,오늘날 아마존 유역의 환경난민도 "번영과 멸망 사이에는 고작 60㎝ 두께의 흙이 놓여 있다"는 저자의 말을 뒷받침한다.
1m도 되지 않는 흙의 두께는 지구 반지름의 1000만분의 1을 조금 넘을 뿐이다. 저자는 이런 흙을 '지구의 살갗'이라며 흙의 생성과 침식 사이의 균형 덕택에 지구의 생명이 유지돼 왔다고 설명한다.
흙을 받치는 기반암이 풍화되고 유기물이 활발히 움직여 겉흙 10㎝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100년 혹은 10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인간이 벌이는 숲의 개간과 농경지 확대,도시화,대규모 건설공사 등은 흙의 생성 속도를 훨씬 능가한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 문명을 보다 길게 유지하려면 흙을 지속 가능한 삶의 기초로서 대해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개인들이 실천해야 할 흙 보호 대책을 들려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