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화가라는 인식 깨고 사물을 2차원의 '면'으로 분석
사람의 몸이 가장 적합한 소재
'마티스-파격적 창조력'이란 제목이 붙은 이 전시회는 1913년부터 1917년까지의 마티스 작품을 다룬다. 단 5년간의 시기와 전시작품 110점이라는 숫자는 이 미술관의 규모에 비해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티스가 사물의 형태를 단순한 면으로 쪼개 추상적으로 그려가던 중요한 시기의 대표작들을 통해 그가 새로운 시도를 얼마나 많이 한 작가였는지 보여준다.
전시의 시작과 끝은 누드 그림이다. 마티스가 자신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꼽은 '강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1909~1917년)이 전시실 맨 끝방에 걸려 있다. 원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IC: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소장품인데 이번 전시가 모마와 AIC의 공동기획이기에 출품됐다.
전시실의 첫 방은 이 대작을 그리기 전부터 마티스가 열심히 연습하고 반복해서 그린 누드,그중에서도 춤추는 누드와 목욕하는 그림들을 보여준다.
마티스는 왜 춤추는 사람과 목욕하는 사람들을 즐겨 그렸을까?
사물의 형태를 3차원이 아닌 2차원의 '면'으로 분석하는 것은 마티스,피카소,세잔 등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이런 호기심을 화면에 펼쳐 보이기에 '사람의 몸'은 매우 적합한 소재였다. 우리는 보통 마티스를 '색채의 화가'로 배웠기에 원색을 화려하게 쓴 그림만 떠올리지만,그건 어디까지나 마티스 작품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이 전시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마티스는 초기부터 진보적인 화가였다. 벌거벗은 사람 다섯이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유명한 그림 '댄스 Ⅱ'(1910년작,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미술관 소장)는 전통적인 누드나 춤 그림과 달랐기 때문에 1910년 파리 살롱도톤 전시에서 혹평을 받았다.
당시 마티스의 팬으로 이 그림을 주문했던 러시아 컬렉터 슈슈킨이 이 결과를 보고 컬렉션을 취소했다가 마음을 바꿔 다시 사기도 했다. 이때 파리 화단에 실망한 마티스는 그곳을 떠나 스페인과 모로코로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소재를 섭렵했다. 그리고 1913년 파리로 다시 돌아온 뒤부터는 사물의 구조 분석에 매달렸다. 마티스는 자신의 새로운 그림에 대해 "현대 건축의 원리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네모난 돌과 나무로 건물을 쌓아가듯이 마티스는 단순한 도형을 쌓아 복잡한 사물을 완성하는 것처럼 그렸다. 그래서 사람 몸이든 물체든 납작하고 경직돼 보이고,색깔도 더 이상 화려하지 않게 푸른색,회색,검은색 정도로 줄어들었다.
당시 파리의 유명한 평론가 기욤 아폴리네르가 피카소,세잔,마티스를 가리켜 말한 대로 '신선함,힘,감수성이 가득한' 미술이었다. 이들 덕분에 당시 파리의 화단은 전통과 완전 결별을 선언했고,이후 서양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전시는 마티스의 이런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푸른 창문'(1913년)을 비롯해 '모로코 사람들'(1916년),'피아노 레슨'(1916년) 등 대표작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또 누드 · 정물화 · 초상화 등 그가 즐긴 소재의 그림 및 스페인과 모로코 여행을 하며 그린 색다른 작품들도 많아 마티스 화풍의 점진적인 변화를 되짚어 볼 수 있다.
색채의 화가로서든,사물의 구조를 분석한 화가로서든,마티스는 전통적인 미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새 경지를 열었다는 점에서 한길을 걷고 있었다. 그가 남긴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내 목표는 언제나 같다. 다만 거기 이르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쓸 뿐이다. " 전시는 오는 10월11일까지 계속된다.
뉴욕=이규현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