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는 서양에서 여성들의 복장에서 다리 노출이 시작된 때로 평가받는다. 이전까지 가능하면 감춰두려 했던 다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데서 그친게 아니라 프랑스의 역사학자 장 클로드 볼로뉴에 따르면 “중세사회가 하반신의 ‘추악한 부분’에 어느정도 편견을 갖고 있었다면 16세기엔 여성이 폭넓은 치마를 때론 무례하게 걷어 올리는 것을 너그럽게 눈감아줬다”고 기술할 정도로 적극적인 노출이 감행되기도 했다. 즉 말(馬)만한 처자들이 이런저런 기회가 생기면 다리를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서 14세기 말엽부터 귀부인들 사이에서 오늘날 서양 애로영화에서 자주보이는 가터벨트의 원형이라 할 스타킹 고정대님이 등장하게 되고, 역설적으로 이 스타킹 고정대님이 여성들이 넓적다리를 과시하는데 적잖이 사용됐다는 설명이다.

어쨌든 16세기가 되면 “귀부인들이 하반신에 대한 수치심부터 저버렸다”는 말이 나돌게 됐는데, 사정이 그리된 연유는 말을 타는데 있어 여성용 안장이 등장한게 한 몫했다.

이 시기 상류 귀족여성을 대상으로 새로 보급된 여성용 안장은 아마존의 여전사처럼 여성들을 말에 오를 수 있게 했지만 말에 타기 위해선 안장을 얹은 말 위로 오른발을 들어 올려놔야 했다. 자연히 장딴지와 허벅지를 드러낼 수 밖에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여성들 사이에 승마유행이 퍼지게되고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가트린 드 메디치 주변인물들 사이에서부터 ‘칼송’이라는 승마바지가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승마바지는 승마에 서투른 여성들이 낙마해 벌러덩 큰대자로 자빠지더라도 수컷의 시선으로부터 적절하게 가려야 할 곳을 가려주고, 이에따라 맘놓고 자빠져도 덜 부끄럽게 해주면서 인기가 치솟는다.

그러면서도 칼송은 몸에 꽉 끼어서 대퇴부 형태가 낱낱이 드러날 뿐 아니라 각종 부스러기를 채워넣으면 당시 유행하던 풍만한 몸매로 둔갑할 수 있는 부가효과도 있어 감추는 듯 하면서 드러내고, 드러내면서 감추는 데 제격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안장과 승마자세에 적합한 복장이 성적도구로도 활용되면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후 이 칼송은 유럽전역 귀부인들에게 인기를 얻어 1563년 에든버러에서 작성된 메리 스튜어트의 재산목록에도 등장, ‘여왕의 옷’의 입지도 굳힌다.

불어 단어 칼송은 이탈리아어로 실내화를 의미하는 칼초네에서 나왔다고 전해지지만 민간에선 나름의 자생적 어원분석이 더 큰 인기를 끌었다.16세기 부르고뉴 지방의 라블레라고 불리던 작가 타부로가 언어유희적으로 분석한 어원분석은 매우 성적인 메타포를 함유하고 있다.

타부로는 “궁정의 숙녀들이 그 ‘짧은 바지’를 착용하기 시작할 즈음,남자들의 바지와 구별되는 명칭을 정하기위해 여자들 사이에 모임이 있었다”며 “결국 그것을 ‘살 콩(sale con·더러운 여성성기)’에 가까운 칼 송(claeson)’이라 이름지었다”고 설명했다. 또 바지들이 해져서 하인들에게 넘어갈 때는 ‘라스 콩(lasse con·지쳐버린 여성성기)’이라 불렀다는 설명도 곁들이면서. 이후 칼송은 17세기말까지 여성 속옷의 뜻도 같이 지니게 됐다고 한며 오늘날 현대 불어에서도 팬티란 뜻으로 쓰인다.

최근 날이 더워지면서 여성들의 거리 패션도 과감해지고,때론 민망한 지경에 이르곤 하는 듯하다. 며칠 전 새벽 출근길(이른 시간이라 지하철이 좀 한산했다.)지하철에서 자리가 나 잽싸게 앉은 뒤 책을 보려 가방을 뒤지다 우연찮게 앞자리에 미니스커트 입은 젊은 여성이 벌러덩 앉아있는 모습을 목도하게 됐는데(이전에 상상했던 것만큼 좋기만 한 기억은 아니었다).결국 찰나의 순간 ‘못 볼 것’을 본 뒤 출근길 내내 죄 지은 인간마냥 민망해서 눈 못돌린채 책만 뚫어져라 열심히 봐야만 한 기억도 있다.노출의상이 좋은면(?)이 많지만 불특정 다수를 죄인이나 범죄인 취급하게 만들지 않는 센스도 발휘해 주시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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