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염치한 세상에서 부끄러움은 일종의 청량제다. 어른들의 꾸중에 볼을 붉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신통하다. 수줍은 듯 망설이는 중년 여인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부끄러움이 유발한 이런 행동은 순식간에 우리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타인을 초대한다. 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부끄러움 코드》는 현대인이 잃어가고 있는 부끄러움이 실은 중요한 인간 조건임을 일깨운다. 그리고 부끄러움의 가치를 재발견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사는 게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논지를 튼실한 이론적 체계를 바탕으로 가볍게 전개한다.
부끄러움은 오랫동안 패자(敗者)의 감정으로 여겨졌다. 위축형,은둔형,자아공격형과 타인 공격형 등으로 나타나곤 했으니까.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경우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제대로 된 대처법을 찾는다면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된다는 얘기다.
부끄러움은 내 인식의 넓이 안에 다른 사람의 시각을 끌어들인 결과다. 인간의 한계를 깊게,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감정이란 점에서 오히려 승자의 감정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다반사인 이 시대,잘못된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소중한 능력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회 진화적 관점에서 부끄러움은 우리를 사회에 더 잘 적응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남이 불편해할 일은 미리 자제한다. 인간관계가 작동돼 가는 방향을 볼 줄 아는 것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