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관 최도렬 화백은 골동품을 취급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미술에 취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노련한 기량과 세련된 필법으로 많은 우수 작품을 내놓은 명화가로 알려져 있다.

최도렬 화백은 1918년 강원도 울진군에서 태어났다. 1925년부터 울진공립보통학교와 서울 중동중학교를 다녔다. 이 시기 조선일보가 주최했던 학생미술전람회에 '안개 내리는 새벽길'을 출품, 2등에 당선되면서 미술 인생을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고학을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 예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창작활동을 계속했는데, '저물어가는 날' '금강산 풍경' '촌가' 등의 작품이 전람회에 입선됐다. 특히 '촌가'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 후보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43년에 귀국한 그는 병풍 그림 등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해방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강원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1952년부터는 평양에서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지도원, 현역 미술가로 활동하며 풍경 위주의 작품을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국화와 물고기' '금강산 보덕굴' '해금강' '만경대' '세존폭포' 등이 있다. 특히 '국화와 물고기'는 "단붓질로 물고기의 특징이 생생하게 표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 화백은 1993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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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문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