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품에 들기 위해 이제는 당신의 그림자 안에 다가섭니다.

시월,그늘진 자리는 어느덧 싸늘하군요.

지난 여름 몇 차례 범람에 시리도록 날을 벼린 물이 두가슴 사이 으늑한 골을 따라 흐르고,하늘이 담겨 미어지는 여울에서 그리움의 아득한 얼굴을 봅니다.

얹힌 곳을 풀어 내릴수록 넓어지는 하심(下心)의 자락에서 나무들은 일제히 잎을 털고,더 버릴 것 없는 마음

웅숭깊은 자리에서 한 해의 나이테를 손끝으로 더듬어 쥡니다.

사랑하는 이여.

날이면 날마다 산 그림자로 무너져 오는 이여.

이제 내 나이 마흔으로 주름져 오는 물결에 당신이 있고 당신의 그림자가 있고 그 그림자 안에 내가 있습니다. (…)

-김영래 '내린천에서'부분



사랑하는 사람에겐 구름도 냇물도 온통 그리움이다.

미어지도록 하늘이 담긴 내린천 여울에서도 아득히 밀려오는 그리움을 본다.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다가 더 버릴 것 없는 무심의 한 가운데에 '당신'이 있다.

마흔은 가을에 어울리는 나이다.

생의 극점을 지나 거침없이 황혼으로 나아가는 세월.그 안타까운 시간에 깃든 사랑은 설렘보다는 아픔일 것이다.

그래서 '당신'품에 들기 위해 햇살보다는 그림자 안으로 스며들 뿐이다.

그 쓸쓸한 사랑이 결국 어떤 내력을 만들까.

그건 상관없다.

지금은 오직 목메인 그리움만 있으니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