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수도 프라하.어디서나 셔터를 누르면 그대로 작품이 된다.
백탑(百塔)의 도시,북쪽의 로마,유럽의 음악 학원.프라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여준 애칭들을 도심에서 몇 발자국만 떼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프라하는 옛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자리잡은 9세기 말부터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0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놀랄 정도로 중세의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다.
어느 곳에서든 로마네스크,고딕 ,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 등의 다양한 건축양식이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먼저 구시가지 광장으로 가보자.한국 사람들에겐 초콜릿바 '자유시간'의 선전으로 익숙한 고딕양식의 틴 교회와 대형 천문시계가 걸려 있는 구시청사탑이 광장을 감싸안고 있다.
천문시계는 천동설에 기초한 천체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칼렌다륨,별자리와 농사짓는 풍경을 그린 달력 등 두 개의 대형 시계가 위아래로 나란히 있어 사진찍는 명소로 꼽힌다.
아쉽게도 11월 말까지 공사 중이어서 시계를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여전히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광장 복판에는 루터보다 먼저 15세기 가톨릭의 부패를 비판하다 화형당한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 밑받침에는 '진실을 사랑하고,진실을 이야기하고,진실을 지켜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곳에서 프라하의 중심을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영어론 몰다우) 강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로 발길을 돌려보자.프라하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감촉 좋은 돌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장식과 문장(紋章)을 한 아기자기한 건물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 새 전차 길 건너 카렐(찰스) 다리에 닿는다.
체코의 중흥기를 이룬 카렐 4세 때인 1406년 만들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다.
양쪽 난간엔 조각상 30개가 저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민속음악을 들려주는 나이 든 악사,다리 그림을 들고 나온 젊은 화가,몰려든 관광객으로 발걸음을 떼기 어려울 정도다.
고개를 들면 프라하의 상징이라고 하는 프라하 성(城)이 고색창연하면서도 웅장한 자태로 다가온다.
9세기 중반부터 건축이 시작돼 14세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왕궁이다.
요정들이 사는 동화 속의 성 같아 몽환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 그 자체다.
사진 배경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곳은 지금도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하고 있다.
성으로 가기 위해 카렐 다리 건너 밀라스트라나 소지구를 지나 돌길을 오르면 흐랏차니 광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블타바 강을 다시 내려다보면 프라하시를 빼곡히 채운 다양한 건축물의 기기묘묘한 첨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래서 백탑의 도시라 했구나.
성 안은 카렐 다리에서 올려다볼 때의 진한 감동을 주지 못하지만 제3정원에 우뚝 솟은 전통 고딕 양식의 성 비트 성당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1344년 건축이 시작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929년 완성됐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이르지 성당까지 본 후 바깥으로 나가 몇걸음 떼면 왼쪽으로 황금소로(Golden lane)를 만난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인형 같은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지금은 선물가게들이지만 한때는 연금술사들이 살아 황금소로로 불린다.
이 거리의 22번지 파란색 집이 자고 일어나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한때 작품활동을 했던 여동생의 집이다.
여기서 '성(城)'을 집필했다고 한다.
체코는 카프카 외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로 한국에도 알려진 밀란 쿤데라를 낳은 문학성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다시 블타바 강으로 내려오면 구시가지 북쪽 유태인 지구에 닿는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태인 교회 신구(新舊)시나고그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서 구시가지 광장으로 난 길은 유태인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명품 거리로 바뀌었다.
그래서 파리의 거리로 불린다.
다시 구시가지 광장으로 돌아와 간이상점에서 체코 전통맥주인 버드와이저나 플젠으로 목을 축인 후 양쪽으로 늘어선 크리스털 가게쪽으로 가보자.중간쯤에 시커멓게 솟아 있는 고딕양식의 화약탑과 그 옆으로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아르누보 양식의 화려한 시민회관에도 눈길을 주다 보면 이내 프라하 최대 번화가인 바츨라프 광장에 닿는다.
1968년 정치자유화 운동의 불을 댕긴 '프라하의 봄'의 현장이다.
다양한 예술품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고 광장 끝에는 국립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남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신시가지로 들어선다.
신시가지라고 해도 14세기에 세워진 건물들이어서 중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해질 녘엔 다시 카렐 다리로 돌아가자.연인들은 노을에 비친 블타바 강과 카렐 다리,그 위로 장엄하게 솟은 프라하성을 못내 아쉬운 듯 바라보고 있다.
프라하 성은 해가 완전히 넘어가면 푸르스름한 불빛을 받아 오페라의 무대 속에서나 나올 법한 신비한 모습으로 바뀐다.
연인들은 어깻짓을 멈추고 꿈속으로 빠져든다.
카프카도 릴케도 이곳에서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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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인천~프라하 간 직항을 월·목·토요일 주 3회 운항,가는 길이 편해졌다.
인천에서 오후 1시15분 출발한다.
이륙 후 11시간 조금 더 걸리지만 7시간의 시차 때문에 같은 날 프라하 루진 공항에 오후 5시40분 도착한다.
SBS TV 주말 연속극 '프라하의 연인'이 인기를 타면서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루진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갈 땐 다소 불편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은 20코르나(Kc·체코 현지 통화)면 된다.
환율은 달러당 23코르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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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의 음악제...프라하엔 두개의 봄이 있다 ]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 공산당 제1서기장이던 두브체크가 '얼굴 있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옛 소련에 저항했던 정치적 자유화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프라하엔 또 하나의 봄이 있다.
매년 5월12일부터 6월4일까지 프라하에서 열리는 국제 음악제를 '프라하의 봄'이라고 부른다.
이 음악제는 1946년 체코 필하모니 결성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개최됐다.
개막식은 체코를 대표하는 국민음악가 스메타나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시작해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으로 폐막된다.
개막식에는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고 입장권은 일찍부터 마감된다.
체코는 스메타나 외에도 '신세계 교향곡'으로 널리 알려진 드보르자크를 배출했다.
그들의 이름을 딴 스메타나 홀(시민회관)과 드보르자크 홀(예술가의 집)은 일년 내내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대표적인 콘서트 홀이다.
대표적인 콘서트 홀에서 좋은 연주를 들으려면 표를 미리 사두는 게 좋다.
그러나 급조한 여행 계획으로 준비 없이 온 관광객들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웬만한 교회나 성당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하 고광철 국제부 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