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맞으며 비로소
눈을 생각하듯이
눈을 밟으며 비로소
길을 생각하듯이

그대를 지나서 비로소
그대를 생각하듯이.

강은교(1945~) 시집 "벽 속의 편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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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치자.

비로소 그의 무게를 더 느끼게 된다는 메시지를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다.

"맞으며"의 현재형은 "지나서"의 과거를 돋움새기며 눈을 맞는 일의 외로움
과 쓸쓸함을 거기 대비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눈 오는 날의 사랑시로 읽힐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벽 속의 편지"라는 제목은 스스로 유폐되어 있다는 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