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에 가을비
뒷산에 가을비
낯이 설은 마을에
가을 빗소리
이렇다 할 일 없고
기인 긴 밤
목과차 마시면
가을 빗소리

박용래(1920~85) 시집 ''싸락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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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과차는 모과차.
낯선 마을에 가서 한 가을을 나게 되었다.
그날이 그날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 산골.
가을밤은 길고 찾아오는 사람도 할 일도 없고, 앞산에 뒷산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모과차를 마시는 쓸쓸함...
이 때 사람은 오히려 세상의 깊은 곳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