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는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달콤한 러브스토리에서 비극적인 순애보까지 사랑을 묘사하지 않은 작가는
거의 없다.

그러나 사랑의 신비는 워낙 오묘해서 단순한 색깔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중에는 남녀간의 사랑과 동성간의 사랑이 얽혀있는 영역도 있다.

지난해 부커상을 받은 영국작가 이안 맥완(51)은 "드 클레랑보 신드롬"
(종교적 색채를 지닌 동성애 강박관념)이라는 특별한 소재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의 최신 장편소설 "사랑의 신드롬"(승영조 역, 현대문학)은 탁월한
심리묘사로 사랑의 극단적인 단면을 포착한 수작이다.

그는 등장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교차분석하면서 과학과 사랑, 강박관념의
충돌을 진지하게 들춰낸다.

소설의 중심 소재인 "드 클레랑보 신드롬"은 죽을 때까지 사랑의 대상을
쫓아다니는 일종의 사랑병이다.

스토킹이 일방적인 짝사랑이라면 이 신드롬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병이다.

작가는 이 특이한 사랑병을 통해 평범한 사람을 미치기 직전의 상태까지
몰고가는 기이한 힘과 그것이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지를 그려
보인다.

과학저술가인 주인공 조는 결혼 7년째의 평범한 남자다.

그가 28살짜리 청년 제드 패리를 만나면서 예기치 않은 회오리에 휘말린다.

아내 클라리사와 6주만에 재회한 그는 들판으로 피크닉을 갔다가 추락하는
비행기구를 발견하고 구조하러 달려간다.

그는 인근에서 뛰어온 제드 패리 등 다른 남자들과 힘을 합쳐 기구를
붙든다.

그러나 갑작스런 돌풍에 의해 기구는 하늘로 날려 올라가고 이 와중에
한 사람이 추락사한다.

희생자의 시신을 거두러 간 자리에서 조는 패리로부터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런데 패리는 이 사건 이후 끊임없이 그의 곁을 맴돌며 미행까지 한다.

마침내 패리는 "당신의 눈빛에서 사랑을 발견했다"며 편지공세를 펴기도
한다.

패리의 편집증적 사랑은 결국 조와 클라리사의 사이까지 갈라놓는다.

조는 이것이 일종의 정신적 병리현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내와 경찰에게
알리려고 하지만 그들의 몰이해 속에 주저앉고 만다.

결국 상황은 살인으로까지 치닫는다.

작가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상호 소통단절이 엄청난
비극을 불러 일으킨다는 걸 일깨운다.

그는 "사회적으로 일탈한 인물들의 충격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현상,사회구조와 무의식 세계의
갈등이 그의 주목 대상이다.

그가 주인공을 과학 저술가로 설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인공의 이성적 세계와 신드롬 환자의 비이성적 세계가 충돌하는 경계선상
에서 그는 "비극적이면서도 영원한 사랑"의 이면을 그려낸다.

헬륨으로 움직이는 비행기구와 돌발적인 강풍, 오랜만에 만난 아내와
기습적으로 다가온 패리를 대비시키면서 사랑과 집착의 틈새를 섬세하게
묘사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