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돌아갈 모천없는/사막의 연어들,/가슴지느러미는 날마다
/모래파도와 모래해일을 넘어/사막 한복판으로 나아갑니다"("황사"부분)

중견시인 최승호(45)씨가 아홉번째 시집 "그로테스크"(민음사)를 펴냈다.

그는 문명의 모래밭에 묻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비극에 시선을
모은다.

지하철과 인공호수, 폐타이어와 통조림 등 일상속의 "죽음"들을 제목처럼
그로테스크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굴러간다 해도 텅 빈 고무껍질에 불과한/폐타이어는/석유문명에 버림받은
듯/길을 벗어나 넘어져 있다"("제로"부분)

그에게 비친 세상은 집없는 사람들의 비닐천막 같다.

"마을버스는/마을이 없는 곳으로 돌아간다/마치 내가/나 없는 곳으로
돌아가듯이"("기다림의 풍경"부분)

현대인의 필수품이 돼버린 핸드폰도 그에게는 소통 부재의 상징으로 보인다.

"기다리던 마이크를 잡은 듯/내 옆사람이 말한다./(중략)/말죽거리양재
알지?/모른다구?/방금 거길 통과했다니까/근데 왜 이렇게 저승처럼 감이
머냐?/끊는다. 핸드폰이 울린다"("메시지"부분).

의사소통이 단절된 현실은 "파발마들이 말죽거리로 달려와서/누런 말이빨로
타일벽을 뜯어먹는다"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룬다.

환경운동연합 월간지 "함께 사는 길"의 주간인 그는 환경파괴의
주범들을 시의 도마위에 올려놓는다.

죽어가는 시화호를 바라보며 "개펄은 거대한 조개무덤으로 변해 버렸다"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고 통탄하는 시인.

그는 "수달 멧돼지 오소리 너구리 고라니 멧밭쥐..." 등 동강 유역에 사는
동식물의 이름을 5페이지나 나열해놓고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그는 "큰 고구마처럼 잠들어 있는" 노숙자로부터 "대지 위의 한
농부"("타일 위의 잠")를 떠올린다.

또 "비늘을 삼키고 끌려나오는 묵직한 민물조개"에서 "침묵의 덩어리"
("마합")를 발견한다.

그에게 희망은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말없음표"와 동의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