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다소 도발적이라 망설였지만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자기반성
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 제목을 택했다"

중견평론가 김주연 숙명여대교수가 "사악한 지식인"(문이당 7천원)이라는
문화비평집을 냈다.

이 책은 김교수가 최근 10여년동안 신문 잡지등에 기고한 칼럼들을 한데
모은 책.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한국사회 현실에 대해 인문학적 비판을 가했다.

김교수는 "60년대의 4.19로부터 오늘날 한보사태에 이르기까지 각종 모순과
문제점들을 분석한 결과 한국사회가 정신적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정신적 자양은 정치인 군인 관료 기업가등 기득권계층이 제공할
수 있는게 아니다.

대학교수 문인등 이른바 지식인들의 몫이다.

이를 제때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지식인들의 직무유기가 총체적 부실의
가장 큰 원인이라 할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독일 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를 인용, 60년대이후 한국의 지식인
대부분이 "도구적 이성"만을 추구했다고 비판했다.

또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냉정히 인식하지 못하고
교만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생활에 이용되는 기술관련 학문만이 대접받고 인간의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철저히 도외시됐다. 또 일부 인문 사회과학자들은 이름을
날리면 곧 정치에 뛰어드는등 사회 전체적 지성 함양에는 소홀했다.
이러다보니 대중들이 지식인의 언행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힘있는 정치가
에게만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는 이런 지적 사회적 풍토의 기원을 한국의 전통사상인 샤머니즘과
주자학의 명분론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샤머니즘은 철저한 세속주의와 가족주의로 특징지워진다.

또 주자학은 실제현실과 괴리된 명분만이 최상의 가치다.

따라서 한국문화는 입신양명을 통한 나와 가족의 이익만이 절대선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공의식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구조라는게 그의 설명
이다.

김교수는 20세기말 다시 출현하는 무당과 신비주의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지식인들이 합리적 이성의 힘으로 보편타당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8세기 독일을 예로 들어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18세기 초까지 독일은 유럽의 야만국이자 문제아로 치부됐다. 대부분이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가난에 찌든 문명과는 거리가 먼 국가였다. 그러나
괴테 하이네등대문호와 헤겔 마르크스등 위대한 철학자들의 탄생으로 상황은
바뀌었다"

서울대 독문학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학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김교수는 "문학을 넘어서" "사랑과 권력"등의 저서를 냈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