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이해하는 지름길은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꼼꼼하게 읽는 일입니다.
헤엄치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이 제일 먼저 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놀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시는 정제된 언어예술이므로
"언어적 세목"에 대한 음미가 필수적입니다"

"시란 무엇인가"(민음사간 8,000원)를 펴낸 유종호교수(이화여대 영문과.
문학평론가)는 시를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말의 맛"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김소월에서 청록파에 이르는 해방전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시어 리듬등 내재적인 요소에 대한 분석과 구체적 감상포인트를 제시
함으로써 독자들이 좋은 시를 고르는 안목과 감식력을 높일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한직의 "놉새가 불면"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많이 인용, 우리 말의 기층어휘가 갖는 묘미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젊은 독자들이 최근의 시인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친숙하지만 현대시의
고전이라할수 있는 해방이전의 작품에는 어두운듯 합니다. 그래서 정지용
백석 임화 이용악 윤동주 서정주 청록파들의 작품을 많이 다뤘습니다.
아울러 우리시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시대적인 상황과 시인의 특징 등을
함께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전체 12장으로 구성된 이책에서 유씨는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시인이란 평생토록 모국어인 "제1언어"와의 사랑놀이를 지속하는 사람
이지요. 낱말 하나하나의 생명력과 감칠맛나는 리듬을 통해 우리의 내면
풍경을 표현한 것이 훌륭한 작품입니다. 리듬감이 뛰어난 작품일수록
암송하기 쉬운것도 이때문이지요"

유씨는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이 시의 감춰진 의미찾기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건강한 시읽기"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서정시를
메시지전달 위주로 분석하는 것은 마치 가곡을 가사만 가지고 검토하는
것과 같은 파행적 접근"이라고 경고했다.

"독자들도 주체적인 판단기준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남들의 평가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다보니 겉핥기식 독서가 만연해 있어요. 그러나
정말 좋은 시는 언어직관에 의해 느껴지는 것입니다. 해부하듯 이리저리
파헤쳐 "학습"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죠.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논어의 구절은 모든
예술체험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동안 예리한 현장비평으로 한국문학의 지평을 확대시켜온 유씨는 "앞으로
창작에도 관심을 가져 볼 생각"이라며 "몇년안에 최소한 시집과 소설집
한권씩을 내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서로는 "비순수의 선언" "문학과 현실" "동시대의 시와 진실" "사회
역사적 상상력" "문학이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