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전혀 없어 낮공연을 취소하는 작품이 나오는 정도. 겨울이고
대학이 방학중인데다 유명연예인을 앞세운 대형 뮤지컬공연이 강세를
보이는 까닭이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지난연말이래 3개월이상 공연되고 있는 연극이 있어
관심을 끈다.
극단예우의 "욕망의 섬"이 바로 그것. 제목에서부터 묘한 호기심을 자극
하는 이 극은 잠재된 욕망, 특히 성적욕망과 이에따른 소유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짐작과는 달리 결코 추하거나 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지 않는다.
벗기기연극을 기대한 관객은 실망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극의 무대는 외딴 섬.전쟁으로 대학교수였던 남편을 잃은 아가타와 딸
실비아, 시누이 삐아등 세 여자만 살고있는 곳이다.
이 섬은 과거 아가타가 남편에 대한 소유욕과 질투심때문에 그를 고립
시켰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어느날 남편과 함께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던 앙제로가 찾아온다.
그는세 여인을 은밀히 유혹하고 결국 세 여자는 앙제로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는 갈등에 휩싸인다.
각각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겉으로는 화해를 시도하지만 이때 연극은
반전된다.
아가타의 질투로 인해 앙제로가 우물에 빠져죽게되고 실비아와 삐아는
섬을 떠나는 것이다.
이탈리아작가 유고베티 원작인 "욕망의 섬"은 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그로인한 갈등과 파멸을 담고있다.
하지만 연출자 김혁수씨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능한한 원시적으로
돌아간 삶이며, 비록 파멸로 끝맺지만 극의 메시지는 순수하고 생래적인
욕망의 아름다움"이라고 단언한다.
이 극은 결국 "욕망의 섬"에서 보여지는 원초적 욕망이 소위 문명사회
에서 일어나는 지위나 권세 부에 대한 욕구보다 훨씬 인간적임을 전한다.
연극은 앙제로가 빠져죽은 우물을 향해 "이제 겨우 우리 둘이 남았어요"
라고 울부짖는 아가타를 뒤로하고 끝맺는다.
관객 모두가 혼자 소유하고픈 욕망은 어쩌면 인간의 원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아가타역의 박혜진씨가 보여주는 완숙한 연기가 자칫 통속적으로 빠지기
쉬운극을 돋보이게 한다.
3월6일까지 미리내소극장(745-8535).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