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시인 한분순씨(52)가 등단 25년만에 추리기법을 원용한 첫장편소설 "흑
장미"(명지사간)를 펴내 화제가 되고있다.

70년 서울신문에 시 "옥적"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한씨는 그동안 "장편소설
만큼은 한편을 쓰더라도 대표작으로 남을만한 것을 써야 한다"는 지론으로
장편 출간을 미뤄왔었다.

그가 오랜 산고끝에 내놓은 이 소설은 스승의 아내를 향한 한 젊은이의 애
틋한 사랑과 아픔을 다루는 한편으로 인간의 본질문제를 독특한 추리기법을
이용해 파헤친 작품.

한씨의 이번 추리소설출간은 세계적인 추리작가가 여성인데 반해 이렇다할
여성추리작가가 없는 국내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문단안팎의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있다.

이야기는 무역회사 홍보부에 근무하는 편운식이 대학은사의 부인이자 출판
사 편집인인 이은주여사를 만나러갔다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녀를 발견하면
서 시작된다.

이여사는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화가.

그러나 한창 촉망받던 시절 전처소생의 딸까지 있는 대학교수와 결혼해 주
위를 놀라게했던 인물이다.

남편 최지철은 대학교수이자 존경받는 작가지만 유명한 바람둥이.
편운식은 국문과 졸업생으로 전공과는 무관한 곳에 취직을 하고도 창작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최교수를 찾아다닌다.

이들의 얽히고 설킨 애증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야망과 갈등 욕망의 세계가
회화적으로 펼쳐진다.

시인이자 문장과 구성력이 뛰어난 산문가로 널리 알려진 한씨가 특유의 섬
세한 심리묘사를 바탕으로 단단하게 엮어냄으로써 그간의 추리물들이 보여
줬던 줄거리 위주의 서술체계를 한차원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고있다.

데뷔이래 줄곧 "혼탁한 먼지세상"에 맞서 따뜻한 시어로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감싸 안아온 작가의 감수성이 곳곳에서 작품을 안정감있게 떠받치고
있다.

또 치밀한 상황설정을 통해 극적 긴장과 재미를 함께 성취하고 있는것도
특징. 사건을 분석하고 추적하는 3인칭 서술자가 겪는 내면의 갈등이 표출되
는 것도 이색적인데 이는 "장르 넘나들기"의 입체효과도 풀이된다.

실제로 작가는 "우리나라도 이제 장르의 벽을 완전히 허물때가 됐다"며
작가의 표현 또한 보다 자유로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 시조 수필 소설등 여러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한씨는 앞으로 재미
있고도 오랜 여운이 남는 장편소설 쓰기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씨는 그간 시집 "실내악을 위한 주제" "서울 한낮",수필집 "어느날 문득
사랑앞에서" "소박한 날의 청춘"등을 출간했으며 "한국시조문학상" "정운문
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신문 "퀸"편집부국장으로 재직중.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