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흥행의 마술사 김종학 PD(43)가 프리랜서 선언 이후 첫선을 보이는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SBS TV <모래시계>가 오는 9일 방영된다.

지난 77년 MBC 입사이후 <여명의 눈동자>를 비롯해 <동토의 왕국> <제5열>
<인간시장>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조선총독부> 등 묵직한 역사소재로
승부를 걸어온 김PD는 이번에도 역시 작가 송지나(33)와손잡고 제작한 24부작
<모래시계>를 통해 민감한 현대사인 광주사태, 삼청교육대, 카지노사건,
검사와 조직폭력 문제 등을 교묘히 넘나드는 대하드라마를
엮어냈다.

"<여명의 눈동자>가 철모르고 만든 작품이라면 <모래시계>는 철이 들고 나서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말 시사회에서 본 감상은 홍콩과 미국의 어떤 액션물
에 못지 않은 박진감과 사실성 짙은 영상언어,그리고 적절하고 맛깔나는 대사
들로 마치 훌륭한 영화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김PD도 "철들고 만든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 연출자로서의 자신감을 표현
했다.

이 드라마는 3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건달세계에 몸 담고 있었으나광주사태,삼청교육대,정치테러 사건 등을 통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 박태수(최민수분).

박의 애인이면서 끝내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되는 윤혜린(고현정분).

그녀는 카지노계의 대부의 딸이지만 평범한 여대생으로서 부도덕한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에 적극 가담하다가 결국 카지노 대부의 후계자가
된다.

그리고 박태수의고향친구이자 혜린의 대학동창인 검사 강우석(박상원분).

80년 광주에 계엄군으로투입돼 인생의 커다란 물음을 안게 된 그는 검사가
되어 사회불의에 맞서면서 박태수, 윤혜린, 그리고 그들의 주변인물과 갈등
한다.

"이왕 폭력쓰는 것 나라를 위해 써야되는 것 아니냐" 거물급 정계 브로커가
최민수를 정치폭력의 세계로 끌어들이면서 유혹하는 대사가 시사하듯 이
드라마는 깡패들의 폭력으로부터 정치폭력, 돈에 의한 폭력,진압군의 폭력
등이 난무하면서 극의 역동성을 한층 부추기고 있다.

지나친 폭력묘사가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연출자는
"보이는 폭력 보다 보이지 않는 정치 사회적인 폭력을 폭로하려 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그래도 드라마의 폭력이 사회문제가 된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폭력 장면을 극의구성에 필요불가결한 한 요소로 절묘하게 삽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묘사하고 있는 최근의 현대사 대목대목들도 작자와 연출자가
광주피해자, 조직폭력배 등을 직접 취재한 내용과 실제 뉴스화면까지
곁들여져 있어 현대사의 해석을 두고 적지않은 논란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연출자는 "전체 드라마의 작품성을 봐 달라"고 주문하면서 "현대사 또는
폭력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미 현대사 소재는
극적 재미와 함께 시청률을 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SBS는 이 작품을 오는 9일 밤 9시50분 첫 방영한 뒤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회씩 집중 방영해 24회를 "폭발적인 인기속에 재빨리
해치운다"는 전략이다.

SBS는 또한 <모래시계>를 내세워 인기급상승 중인 MBC 월화드라마
<까레이스키>와 수목드라마 <아들의 여자>를 동시에 잠재운다는 편성전략도
가지고 있어 이 전략의 성공 여부도 관심거리다.

SBS 프로덕션과 연출계약(60편 5억4천만원)을 맺은 김PD는 첫 납품한
<모래시계>에 이어 곧바로 황석영 원작 <장길산>을 36부작 TV드라마와
영화로 동시에 제작하기로 돼 있어 올 한해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할 것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