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유화 재산보전처분 이모저모>...개풍재벌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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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재산보전처분명령이 떨어짐에 따라 50~60년대 대표적인 재벌이었던
개풍재벌은 사실상 재계에서 사라지게 됐다.
대한유화는 개성상인정신으로 기업을 일으켜 50년대 삼성 삼호그룹에 이어
재계3위의 개풍그룹을 일궜던 고 이정임회장이 70년에 설립한 국내최초이자
최대합성수지업체.
이회장은 창업당시 주력기업이었던 대한양회가 쌍용그룹에 넘어가고 대한
선박이 정리된후 90년6월 타계하기전까지 대한유화에 온정열을 쏟아왔었다.
따라서 대한유화의 법정관리신청은 개풍그룹이 사실상 재계에서 사라지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볼수있다.
고 이회장은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의 2,3대 회장을 맡기도 했고
울산과 구로공단조성에 견인차역할을 하는등 경제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
었다.
그는 기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실천해온 인물이었다.
그가 죽은후 장남 덕규(작고) 차남풍규씨(미래물산대표)등 10명의 상속인이
사상최대규모인 278억5,000만원의 상속세를 주식으로 물납한데서도 그의
이같은 면모를 확인할수 있다.
개풍재벌은 사실상 재계에서 사라지게 됐다.
대한유화는 개성상인정신으로 기업을 일으켜 50년대 삼성 삼호그룹에 이어
재계3위의 개풍그룹을 일궜던 고 이정임회장이 70년에 설립한 국내최초이자
최대합성수지업체.
이회장은 창업당시 주력기업이었던 대한양회가 쌍용그룹에 넘어가고 대한
선박이 정리된후 90년6월 타계하기전까지 대한유화에 온정열을 쏟아왔었다.
따라서 대한유화의 법정관리신청은 개풍그룹이 사실상 재계에서 사라지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볼수있다.
고 이회장은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의 2,3대 회장을 맡기도 했고
울산과 구로공단조성에 견인차역할을 하는등 경제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
었다.
그는 기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실천해온 인물이었다.
그가 죽은후 장남 덕규(작고) 차남풍규씨(미래물산대표)등 10명의 상속인이
사상최대규모인 278억5,000만원의 상속세를 주식으로 물납한데서도 그의
이같은 면모를 확인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