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와이셔츠에 깔끔한 넥타이.

은행원들의 복장이다. 그래서 은행원들을 대표적 화이트칼라라고 한다.
그러나 은행원중엔 와이셔츠대신 간편한 운동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음교환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생활패턴도 전혀 다르다.
저녁에 출근해 다음날 점심때 퇴근한다. 그래서 이들은 "올빼미"라고
불린다. 시간을 못맞추면 은행업무 전체에 착오를 빚기때문에 "시간과
싸우는 사람들"로도 통한다.

"내일 오후2시30분 이후라야 찾으실수 있습니다""아니 2시간전에 돈을
보냈다는데 왜 못찾습니까"
은행창구에선 하루에도 여러번씩 이런 실랑이가 벌어진다. 다른은행이
발행한 어음이나 수표등(타점권)을 입금하면 정상적으로는 다음날
오후2시30분이 지나야 찾을수 있다. 타점권을 받은 은행은 발행은행에서
현금을 찾아와야만 돈을 내준다. 타점권과 현금을 바꾸는 작업은 밤사이에
이뤄진다.

국민은행자금부의 김기수대리. 그는 본점 어음교환반의 실무책임자 이다.
그는 다른사람이 퇴근하는 오후5시30분에야 출근한다. 지난달 30일에도
그랬다.

오후6시. 본점근처에 있는 지점들이 어음을 가져오면서 "시간과의
전쟁"으로 표현되는 그의 일과가 시작됐다.

타점권 접수 마감시간인 오후7시. 7개 지역본부등에서 모은 인근점포의
타점권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날 처리해야할 양은 약60여만장(1조원가량).
월말이라 평소(45만~50만장)보다 약간 많았다. 전산처리실에 있는
수표자동판독기(RS기)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RS기는 1분에 1천여장의
수표나 어음을 발행은행별로 자동분류한다. 한쪽에서는 기계가 처리하지
못하는 수어음을 일일이 손으로 분류,합계를 낸다(어음교환반 총40여명의
주산단수는 모두 1백50단에 이른다).

기계2대와 20명의 인원으로 늦어도 자정까지는 분류작업을 마쳐야 한다.
그래야만 새벽1시까지 금융결제원 서울어음 교환소에 타점권을 제출할수
있다. 그때까지 내지못하면 지연 과태료 30만원을 물어야 한다. 그뿐
아니다. 덩달아 업무가 지연되는 다른 은행으로부터 눈총도 실컷 받아야
한다. 그래서 어음교환반의 "군기"는 군대보다 더 센걸로 유명하다.

새벽1시30분이 넘으면 어음교환소에 갔던 팀이 자기은행발행어음을 가지고
돌아온다. 이때부터 오전7시까지는 받아온 어음을 각 지점별로 나눠야
한다. 남들이 출근하는 아침9시. 각 지점으로 갈 어음이 가득 담긴
자루를 들고 직원들은 지역본부등으로 흘어진다.

이렇듯 그날의 타점권을 밤새 분류교환,그 다음날 오후에 정상으로
결제토록하는 사람들이 어음교환원이다. 은행들은 대개 어음교환반을
20여명씩 2교대로 운영하고있다.

매일 오후 6시40분께면 서울명동성당앞에서 을지로쪽으로 쏜살같이
뛰어가는 신사를 볼수있다. 차림새는 번듯한데 커다란 가방까지메고
달리는 속도는 빠르기만 하다. 그는 서울신탁은행 명동지점 강철규씨이다.
강씨의 보직은 명동지점 어음교환원. 지점에서 그날 받은 타점권을
중간소집소인 본점영업부에 갖다주고 다음날 아침 명동지점 발행어음을
찾아오는 일이다. 서울신탁은행의 어음교환반은 강남별관에 있다.
영업부에선 오후 6시50분까지 인근 30개점포의 어음을 모아 어음교환반에
갖다준다. 그러면 국민은행의 김대리같은 사람이 타점권을
분류,다른은행과 어음을 교환하게된다.

보통 은행영업마감시간은 오후5시이니까 강씨가 굳이 뛰지않아도
마감(6시50분)에 대는것은 충분할것 같다. 그런데 명동지점은 거래처가
제2금융권기관과 대형업체들이 많아 거의 매일 당좌결제등이 예정보다
늦어진다. 그래서 강씨는 지난해 9월 이일을 맡고부터 뛰지 않은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강씨같은 사람은 모든 지점마다 1명씩있다. 이들은 강씨처럼 뛰어야할
경우가 많고 퇴근시간도 늦는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지점에서 제일
"막내"가 어음교환을 하는것이 관행이다.

현재 타점권은 다음날 오후면 결제된다. 지난 85년 8월까지만해도 오늘
입금하면 이틀이 지나야 찾을수 있었다.

그러다가 85년9월부터 수표자동판독기가 들어오고 야간교환으로 바뀌면서
하루가량 앞당겨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은행간 어음교환은 "원시적"인게 사실이다. 은행간
전산망이 아직 완전히 구축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원시적인 어음교환의
뒤안에는 시간및 사고위험성과 싸우는 어음교환원의 수고가 짙게 깔려있다.

<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