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든 여인은 어떻게든 정복하고 마는 바람둥이.언어권에 따라
"카사노바" "돈 주앙" "돈 환"등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이 엽색가는
서구문학사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동서양의 이야기꾼들은 사랑을 쫓아 방황하는 이 탕아의 인생역정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그것은 때때로 이성과 감성의 치열한
대립구도가 되기도 했고,아니면 단순히 생식본능의 자유로운 발산에
근거하고 있기도 했다.

영화"발몽"은 쇼데르도 드 라클로의 소설"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18세기 프랑스혁명시대를 살아가는 한탕아를 그려가고 있다.

바람둥이 이야기답게 인물관계도 복잡하지만 끝내는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택하게 되는 발몽의 마지막 인생에 등장하는 두명의 여인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축이다.

발몽(콜린 퍼스분)과 그에 못지않은 자유부인 메르테이유후작부인(
아네트 베닝분)은 서로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친구관계.

메르테이유는 그녀의 정부인 제르쿠르가 자신의 조카인 세실과
결혼하려하자 제르쿠르를 골탕먹이기위해 탕아 발몽을 시켜 세실의 순
결을 뺐으려 한다.

그러나 투르벨부인(멕 틸리분)에게 매혹된 발몽은 쉽사리 그녀의 음
모에 빠져들지 않는다. 발몽으로서는 처음으로 하는 육체적 관계가 아
닌 진정한 사랑이지만 투르벨은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발몽을 메르테이유는 경멸하고 두사람은 내기까지 건다.발몽
은 결국 투르벨과의 관계에 성공하지만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은 가능
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본모습을 확인한 메르테이유에게 청혼하나 그녀는 이미 새연
인을 만든 상태. 발몽은 발작적인 결투로 생을 마감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발몽보다는 메르테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어떠
한 상황에서도 사랑의 본질에 회의를 품는 그녀의 모습은 놀랍기까지
하다.
밀로스포만 감독은 이러한 인물들을 통하여 타락과 부패에 물든 18
세기 서구사회에 냉소를 보내지만 그웃음은 조금 공허하게 들린다. 탕
아의 사랑놀음에 집중된 탐미주의적인 집착이 시대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