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세계적인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출품한 금속설치작품 ‘트위스트’ 앞에 서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영국의 세계적인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출품한 금속설치작품 ‘트위스트’ 앞에 서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티끌 한 점 없이 거울처럼 매끈한 2.5m 높이의 금속이 불특정한 각도로 휘어져 있다. 은은한 쇳덩어리 속으로 전시장과 관람객이 한꺼번에 빨려든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람과 공간이 서로 뒤엉키며 파도처럼 일렁인다. ‘트위스트’란 제목의 이 작품 표면에서는 관람객이 발길을 옮길 때마다 공간과 어우러지며 색다른 이미지를 쉼 없이 뿜어낸다.

인도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62)는 이처럼 단단한 금속 덩어리를 활용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마치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처럼 풀어놓는다. 지난달 31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그는 그동안 눈에 보이는 작품의 물질적인 상태를 뛰어넘어 그 이면에 자리 잡은 보이지 않는 공간에 주목해왔다.

1954년 인도에서 태어난 카푸어는 20세 때인 1974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뒤 30여년간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성, 정신성에 무게를 두고 강력하고도 뛰어난 조형 언어를 보여주고 있다.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에 출품해 ‘프레미오 2000’상을 받았고, 이듬해 ‘터너상’을 수상하면서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2년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에 길이 155m짜리 조각 ‘마르시아스’를 전시한 것을 비롯해 2006년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입구에 ‘하늘 거울’(지름 10m, 무게 21t),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 ‘구름 문’(길이 20m, 높이 10m, 무게 110t), 런던 올림픽경기장에 높이 114m 대작 ‘아르셀로미탈 궤도’를 설치하는 등 초대형 작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국제 미술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네 번째 여는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군집한 구름들(Gathering Clouds)’. 금속물질의 반사와 왜곡, 전환을 통해 시공의 감각을 뛰어넘어 영적 미학을 탐구한 ‘트위스트’ 시리즈와 오목한 형태 위에 검은색을 입힌 원형 작품 ‘군집한 구름들’ 등 19점을 내놓았다. 형태는 매우 단순하지만 기하학적인 논리와 표면의 색채, 전시 공간의 조합이 묘한 아우라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복잡한 조각보다 숭고한 느낌을 준다.

그는 “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는 관심이 없고 물체에 적용된 힘이 절제된 형태의 움직임으로 어떻게 전환됐는지에만 집중한다”고 말했다. ‘트위스트’ 시리즈는 이런 점에서 금속성 물성과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함께 보여주며 그 상호관계를 미학적 시각으로 더듬어간다. 작품이 관람객의 착시를 일으키며 마술을 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찰흙으로 도자기를 빚는 것을 예로 들면서 “도자기에는 빈 공간(비물질)이 만들어진다”며 “손에 잡히는 찰흙(물성)으로 비정형과 비물질을 창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각의 역사는 물질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물질 안에는 비물질적인 속성도 있죠.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을 영적이라고 합니다. 인간인 우리가 예술을 통해 영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벽면에 불룩하게 한 입체 작업 역시 공간을 수수께끼로 변화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 카푸어는 “내 작품에는 아젠다나 주제가 없고 영적 신비감을 주는 게 바로 주제”라고 말했다. 공간과 형태, 색채가 부리는 조화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가 작품 제목을 ‘운집한 구름’이라고 정한 것도 자신의 관심사인 ‘비정형’이나 ‘비물질성’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란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오브제를 넘어 무한한 공명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매일 명상과 참선을 한다는 그는 “미술가의 소임은 창조와 탄생의 순간을 증언하는 일”이라며 “모든 예술가는 작업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작업을 하기 위해 꿈을 꾼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달 30일까지.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