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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사람의 밤 역시 나 같았으리

    한겨울에 음미해 보는 하이쿠 2수   찬비 내리네 옛사람의 밤 역시 나 같았으리 (しぐるや我も古人の夜に似たる)     재 속의 숯불 숨어 있는 내 집도 눈에 파묻혀 (うづみ火や我かくれ家も雪の中)                            -요사 부손 일본 3대 하이쿠 시인 요사 부손(與謝蕪村·1716~1784)은 오사카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장해서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나 일본 북동부 지방 등을 여행했다. 그 과정에서 하며 많은 문인에게 하이쿠를 배웠다. 그림 솜씨도 뛰어나 서른다섯 살 무렵에는 직업 화가로 교토에 정착해 거의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위대한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를 아주 존경해서 모든 면에서 닮고 싶어 했다. 문화적 전통을 되살리려 애썼다. 마흔다섯 살에 늦장가를 가서 외동딸을 얻었고, 예순여덟 살에 죽어서는 생전의 소원대로 바쇼가 살던 오두막 옆에 묻혔다. ‘찬비 내리네/ 옛사람의 밤 역시/ 나 같았으리’라는 하이쿠는 으슬으슬 찬비 내리는 밤, 지금 나처럼 옛사람도 혼자 고독했으리라는 의미로 읽히지만, 이 시의 옛사람이 그가 평생 흠모하던 바쇼라고 한다. ‘재 속의 숯불/ 숨어 있는 내 집도/ 눈에 파묻혀’에서는 숯불과 눈을 대비시키며 따뜻함과 차가움의 세계를 겹쳐 보여준다. 불을 품고 있는 재와 화로, 화로를 보듬고 있는 집, 집을 감싸 안고 있는 눈,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주 속의 나……. 비교문학자 히라카와 스케히로의 설명이 무릎을 치게 한다. “한 곳에 불씨가 있고, 그것을 덮은 재가 있으며, 그 위를 덮듯이 화로에 붙어 앉은 주인이 있고, 그 작은 방을 에워싼 작은 집이 있다. 그

  •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꽃잎이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落花枝にかへると見れば胡蝶かな -아라키다 모리타케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花の陰あかの他人はなかりけり -고바야시 잇사 '꽃잎이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는 연한 바람 속에서 읽을 때 가장 맛깔스럽다. 꽃잎이 눈처럼 날리는 봄날, 몽환적인 시간 속으로 떨어지는 잎과 바람에 실려 다시 올라가는 잎, 그것을 나비의 날갯짓으로 겹쳐놓은 재주가 신기에 가깝다...

  • 꽃보다도 코에 있었구나 벚꽃 향기는

    그대 그리워져서 등불 켤 무렵 벚꽃이 지네. (人戀し燈ともしころをさくらちる)                         -가야 시라오 두 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命二つの中に生きたゐ櫻哉)                        -마쓰오 바쇼 밤에 핀 벚꽃 오늘 또한 옛날이 되어버렸네. (夕ざくらけふも昔に成りにけり)                   -고바야시 잇사 일본인에게 제일 사랑받는 꽃이 벚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