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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에 웃는 사람

     가장 좋아하는 야생화가 있다. 바로 깽깽이풀이다. 집 정원에서 가장 먼저 피는 복수초 다음으로 두 번째 피는 꽃이다. 겨울이 끝나기 전 그리고 봄이 오기엔 아직 추운 무렵에 핀다. 고운 보라색 빛깔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며칠 못 가 오래 볼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깽깽이풀꽃이 더욱 애달프고 곱게 느껴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꽃이 피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꽃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깽깽...

  • 미워할 용기

    “엄마! 사람을 미워해 본 적 있어요?” “당연하지.” “아버지도 미워요?” “그럼!”  아들과의 대화에는 필자 나름 원칙이 있다. '묻는 말에만 답하고 절대로 되묻지 않는 것'이다. 사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그 상황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궁금해서 되묻거나 다그치면 아들이 다시는 이런 말을 못 해 마음을 닫을 것 같아 듣는 편이다.  그래서 다시 물을 때까지 기다린다. 필요에 따라 그 시기가 빨리 오기도 한다. 또 스스로 ...

  • 인생 후르츠!

    “곧 이사 할 건데 너무 실망했어!” “왜요?” “<구경하는 집>하고 너무 달라서.” “아!”  지인이 한 말이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곧 입주할 예정이다. 최종 마감 확인을 위해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감재를 보고 큰 실망을 한 것이다. 그 이유가 분양 전 ‘구경하는 집’ 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 일이다. 집 앞에 서서 픽업할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이 집 주인이 바뀌었나요?” “아닙니다. 왜 그러세요?” “원래 이 집 아주머니가 부지런해서 봄이 되면 꽃을 심고 워낙 집을 잘 가꾸었는데, 요새 그 아주머니가 도통 일을 안해서요. 제가 때마다 사진 찍으러 오거든요!” “아!”  약간의 충격(?)이었다. 누군가 필자 정원을 보아주고 기다려 주다니. 나 좋으라고 정성들인 것인데 말이다. 한편으론 필자를 알아보지 못해 안심했다. 마스크와 모자를 둘러쓰고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아저씨에게 필자 집은 <구경하는 집>이 아니었나 싶다.  ‘구경하는 집’은 <견본 주택>을 말한다. 사전에 따르면 ‘견본 주택은 건축업자가 소비자에게 집을 팔기 위해 본보기로 먼저 신축한 집’이라고 한다. 일명 모델하우스와 본보기 집 또는 주택으로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쇼 하우스 Show House’로 지칭한다. 한마디로 보여주고 팔기 위한 집이다.  사는 동네가 전원주택 마을이다 보니 봄이면 사람들이 구경하러 제법 북적인다. 언젠가 우리 동네 <구경하는 집> 대표 격인 집을 꼽아 보았다. (순전히 필자 안목이다) 일단 내부를 볼 수 없으니 특별한 기준이 없다. 밖에서 보아

  • "그게 가족이니까!"

     운전 중에 전화가 왔다. 주차할 동안 남편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전화를 건네받았다. “안녕하세요!” “어머나, 방금 전화 받은 사람이 누구야?” “남편이에요!” “목소리가 너무 좋다! 웬 청년이 전화 받는 줄 알았어!” “?”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일이 더러 있다. 이 상황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단 한 번도 남편 목소리가 좋다고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 목소리가 좋대!” “아, 원래부터 그런 소리 많이 들어!” “헐. 나는 처음 듣는데?” “다들 그렇게 말해.”  ‘메라비언 법칙’이란 게 있다.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 55%, 청각 38%, 그리고 언어가 7%라는 법칙이다. 미국의 UCLA 심리학과교수 ‘앨버트 메라비언’이 1971년 출간한 저서 ‘사일런트 메시지 Silent Message’에 발표한 이론이다. 여기서 시각이미지는 복장과 헤어스타일, 자세와 제스처 등 외적 부분을 말한다. 청각이미지는 목소리 톤이나 음색처럼 언어의 품질이다. 언어는 말의 내용을 말한다.  “눈으로 듣는다!”는 말이 있다. 시각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메라비언 법칙’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판가름할 때 시각, 청각이미지 즉 외모와 태도 그리고 말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목소리가 93%를 차지하니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이 이론을 발표한 메라비언 자신이 ‘메라비언 법칙’에 대한 오류를 경계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언어, 말의 내용’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외적인 부분에만 치중해 상대의 호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

  • "눈이 부시게!"

    며칠 전 지인들과 나눈 대화다.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여고시절로 가고 싶어!” “왜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그 때로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것 같아!” “호호호.”  나이에 따라 대화가 많이 달라진다. 20대엔 직업이나 직장 그리고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30대에는 출산과 육아 이야기를 주로 했다. 40대가 되어 자녀 교육과 자녀 취업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50대가 되면 자녀 결혼과 더러는...

  • "힘들어서 떠나요!"

      지인 이야기다. 그는 오래전 강원도 정선의 한 탄광촌에 살았다. 그 곳에서 광부로 일하며 1남 1녀를 키웠다. 아들이 자라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다. 아들이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을 보이며 자랑했다. “아빠! 제가 그린 그림이에요!” “그래, 잘 그렸구나. 그런데 이건 뭐니?” “물이 흐르는 강이에요.” “물이 왜 검정색이지?” “우리 동네 물이 전부 검정색이잖아요!”   탄광촌에 사는 아들이 매일 보는 물은 검정색이었다. 그래서 ...

  • 최고의 배려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 소개한다.  구두쇠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하루는 구두쇠마을에서도 구두쇠 집안으로 유명한 허 씨네 며느리가 쫓겨났다는 소문이 났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허 씨네 며느리를 불러놓고 자초지종을 듣게 된다. 며느리의 설명이다. “제가 장날에 찹쌀 팔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기집 주인이 고깃덩이 하나가 남았으니 저보고 사라는 거예요!” “그래서 샀니?” “아니요. 제가 누굽니까? 고기만 만져 보고 얼른 집에 와서 냄비에 손을 씻어 국을 끓여 아버님께 드렸다가 쫓겨났어요!” “뭐라고 하면서 쫓겨 난건데?” “가마솥에 손을 씻었다면 온 식구가 먹을 거라고 하면서 쫓겨났어요!” “그래! 쫓겨나도 싸다 싸!” “왜요?” “우물에 손을 씻었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먹을 것 아니야!” “네?” 한 번 듣고 웃어넘길 이야기지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는 메시지다.  지난 설 연휴 기간에 뮤지컬 ‘라이언 킹’을 보러 갔다. 오페라극장에 도착했는데 공연 시간이 남아 점심을 먹기 위해 극장 옆 카페에 들렀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아서 주문 대기 줄이 길었고 빈 테이블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은 주문을 하고 자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간혹 빈자리가 보여 가까이 가보면 가방이나 옷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그 때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저기…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의자와 테이블을 옮기는 것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그는 초등학생 딸과 아들이 함께 세 사람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앉은 테이

  • "다시 시작합니다!"

    “엄마! 이번 주 같이 놀아요.” “그래. 근데 왜?” “다음 주에 복학하잖아요! 이제 시간이 없으니 더 놀아야죠!” “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준비하는 자’와 ‘준비하지 않는 자’ 다. 그리고 군인이 말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바로 ‘군인’과 ‘민간인’이다. 그만큼 생각과 생활이 다른 생존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이 민간인으로 돌아왔다. 군인에서 다시 학생 신분인 ‘복학생’이 됐다. 복학은 사전에 의하면 정학이나 휴학을 하고 있던 학생이 다시 학교에 복귀하는 것으로 다시 학업에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들이 복학 이후 학교생활에 대해 막연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 다시 시작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며칠 전 지인이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몇 년 만에 온 연락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그간 소식이 궁금했다. 그동안 먼 거리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누긴 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면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멀리서 보다가 만나서 얼굴 보니 좋네요!” “더 젊어졌어요!” “호호호.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녀가 들려준 사연이다. 결혼 후 25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교회 봉사활동 중에 ‘구제 업무’ 보조를 했었다고 한다. 구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는 사회복지 관련 일이다. 그런데 사회복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늘 안타까웠고 ‘제대로 돕지 못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경험을 통해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학해서 다시 공부하게 된 것이다.  영화 ‘더 테

  • 사람을 얻는 최고의 지혜

      며칠 전 부부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은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다. 식사 후 자리를 옮겨 커피숍에서 희한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 그간 소식을 묻거나 대답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곧 여기저기 두세 명씩 따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만히 옆에 앉아 있다가 이쪽저쪽 어느 쪽을 보고 들어야할지 눈치 볼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왼쪽으로 한 번 돌아보고 “그...

  •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집은 여러모로 티가 난다. 갈수록 예뻐진다. 집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고 새로이 단장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집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마당에 잔디를 새로 깔거나 텃밭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집을 보면 이사 온 사람의 취향을 쉽게 알 수 있다. 더러 흥미로운 집도 있다. 지나치게 장식(?)을 많이 하는 경우인데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작은 마당이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여하튼 밖에서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만큼 좁은 마당을 복잡하게 가득 채우는 것이다. 가령, 꽃과 나무는 물론 여기에 대형 조각상과 각종 대형 화분 그리고 조형물들을 빼곡히 세우는 것이다. 마치 이 모습을 보면 이사 오기 전 상상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다 하는 것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집 안 텃밭에 유실수를 많이 심었는데 그 기억을 재현하고자 필자도 마당에 유실수를 여럿 심었다. 살구나무, 매화나무, 자두나무, 보리수나무, 포도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이 나무들을 묘목으로 심었을 때는 몰랐다. 몇 년 사이 나무가 자라 마당 전체를 그늘지게 해서 잔디가 말라 죽어갔다. 게다가 나무가 무성한 여름이면 좀 과장해 집을 뒤덮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보리수나무는 엄청난 속도로 자랐다. 동네 사람들이 필자 집을 가리켜 ‘보리수나무 집’이라고 부를 정도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나무 솎기다. 자두나무는 키워보니 자두열매를 따먹을 때는 좋았지만 나무줄기에 기름성분 수액이 흘러나와 땅과 옆 나무에 영향

  • “난 요양원에 가기 싫다!”

    몇 년 전 코엑스에서 일이다. 모 전자 휴대폰 신 모델 출시 기념행사에서다. 직원이 휴대폰 전시매장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면 사진에 원하는 글을 새겨준다고 했다. 주로 어떤 글을 새기냐고 물었더니 ‘I Love You’가 가장 많다고 했다. 그 때 남편이 <해로동혈>을 써달라고 하자 직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웃픈(?) 기억이다. <해로동혈(偕老同穴)>은 ‘부부가 한평생 같이 지내며 같이 죽고 죽어서는 같이 무덤에 묻힌다’는 뜻이다. 시경에 실린 중국 하남성 황화 유역에 있던 나라들의 민요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백년해로와 같은 뜻이다. 말로는 참 좋은 뜻이다. 필자는 거부하고 ‘I Love You’를 택했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단독주택 단지다.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마당이나 정원이 있어 꾸준히 주인의 손길이 필요로 한다. 동네를 산책하다보면 유난히 정원 관리가 잘 된 집이 있고 반면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 그래선지 동네주민끼리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 집이 전세 집인지 아닌지 알려면 정원을 보면 된다.” 지난 해 뒷집에 한 가정이 이사를 왔다. 80대 노부부와 50대로 보이는 딸이 함께였다. 노부부는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딸 역시 노부부와 매일 아침산책에 동행했고 주로 정원에 앉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나머지 가족으로 보이는 형제자매들도 매 주말이면 노부부를 찾아왔다. 흥미로운 것은 엄마와 딸이었다. 엄마와 딸은 아침마다 잔디밭에 잡초를 뽑았다. 이사를 오자마자 마당, 작은 잔디밭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한낮에는 그늘진 곳에 앉아 대화를 하곤 했다. 필자가 정원에 물을 주면 “정원이 참 예뻐요!”라고 인사말을 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