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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 김환기가 살던…최고급 '충정아파트' (2)

    소설가 이호철이 이 아파트와 인연을 맺기 전, 아파트에서 살았던 유명인이 있다. 한국 화가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을 그린 사람, 김환기이다. 1971년 작 '우주'가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됐다. 그 전의 기록은 85억에 거래된 '붉은 점화'다. 그 작품도 김환기가 그렸다. 김환기의 기록을 김환기가 깼다. 값비싼 작품 순위 10개 중 9개가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이 아파트에 살았던 기록은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0년 5월 22일 도교의 우에노 공원에서 열린 ‘제 4회 자유미술가전’에 참여한 김환기는 전시 도록에 주소를 ’경성부 죽첨정 도요타 아파트‘로 올렸다. 왜 주소를 도요타 아파트로 올렸을까? 그의 고향은 알려진대로 신안군 안좌도라는 섬이다. 190cm에 육박하는 자신의 키에 대해 섬사람이어서 육지를 보기 위해 목을 길게 빼 그리 되었다는 싱거운 소리를 했던 그였다. 그가 소설가 ’이상‘의 부인이었던 변동림에게 준 자신의 다른 이름 ’향안(鄕岸)‘은 멀리 육지의 언덕을 그리워한 마음이 실려 있다. 이곳에 살았다는 흔적은 1940년 4월에 발간된 문학잡지 '문장'에도 보인다. 김환기는 삽화를 자주 그렸지만 청록파가 대거 등단했던 이 잡지에 수필도 많이 썼다. 섬 생활이 울적해 서울로 올라왔다고 하며 "종일 여관방에 드러누워 지내면서 영화 한편 만들거나 자비로 시집 200부 정도를 낸다거나…그림 100점 정도를 장곡천정(지금의 소공로)에서 개인전을 열거나…(중략) 나중에 여관비를 치르고 나갈 일이 은근히 걱정"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 글에 등장하는 ’여관‘은 이 아파트를 두고 한 말이다. 당시에는 ‘여관’과 ‘아파트’를 구별해 사

  • 중림동을 사랑한 사진사

    "중림동은 참으로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처음 그 골목에 들어서던 날,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 골목을 연상시켰고, 나는 곧바로 '내 사진 테마는 골목안 사람들의 애환, 표제는 골목안 풍경, 이것이 곧 내 평생의 테마다.'라고 결정해버렸다."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중림동의 골목 안 풍경을 찍은 김기찬 사진작가의 말이다. 그의 사진집, 은 6집까지 발간됐다. 사진집에는 중림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풍속화처럼 펼쳐진다. 풍속화가 김홍도가 이 시대에 사진사로 태어난다면 김기찬의 작품과 같은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나 피사체가 되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기까지 수년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는 늘 조심스러워했다. 그들을 찍기 위해 그들과 같아져야 했다.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 말을 걸고 웃으며 점차 그들과 동화돼 갔다. 만 2년이 되어서야 덩치 큰 그가 대문을 열고 들어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사람들은 긴장하지 않았다. 골목을 걸으면 동네 사람들은 ‘아직도 뭐 찍을 게 있냐?’며 먹던 부침개를 나눠주었고, 김치 부스러기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아저씨들도 잔을 내주었다. 더 이상 그는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준 것은 삶의 공간만이 아니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그를 붙잡고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했다. 장장 33년의 세월이었다. 왜 하필 중림동이었을까? 그는 왜 중림동을 사랑한 것일까? 그가 사는 곳이 중림동이라면 퇴근길에 카메라를 들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그의 집은 사직동이다. 사직동은 그가 중림동을 찍기 전, 이미 망가지

  • 예견된 중국 경제 둔화…미래 내다보려면

    50년 전 중국은 중앙 집중적으로 통제된 경제 체계를 갖췄습니다. 국제적으로 고립돼있었고, 비효율적이며 빈곤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1979년 무역·투자를 개방하고, 시장 경제로 전환하며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2018년까지 중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9.5%에 달했습니다. GDP가 약 8년마다 두 배로 불어났으며, 8억명가량의 인구가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중국은 세계의 2대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국가와 무역국가의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개방 이후 중국은 미국의 주요 상품 거래 파트너이자 주요 수입국, 그리고 주요 수출 시장으로 부상했습니다.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통해 미국 연방 부채의 주요 외국 보유국이 돼 미국의 이자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은 둔화하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징후가 수년 전부터 관측됐기 때문입니다. 2007년 14.2%에 달했던 중국의 GDP 성장률은 2018년 6.6%로 감소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중국의 성장률이 5.5%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반동으로 8.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작년 경제성장률은 3%로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6% 아래로 떨어진 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중국 정부는 성장 둔화를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이며, 성장 전략을 바꾸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제 수출과 고정 투자에

  • 예수님, 왜 여기 누워계세요?

    초등학교 시절, 잠 자던 내 머리맡에서 부모님이 뭔가 심각한 대화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의 "목이 잘릴 것 같다"는 섬뜩한 이야기에 잠이 확 깼다. 아버지는 초등학교에서 물품 관리와 행정 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는데, 그 즈음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해고 된다는 것을 목이 잘린다고 표현한 것이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생목이 잘리는 상상을 하며 눈도 뜨지 못하고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직장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조사하면 ‘목이 잘린다’는 말이 수위(首位)에 들 것이다. 직장생활을 삶의 전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의건 타의건 직장을 떠나야 하는 현실은 진짜 목이 날아가는 것과 같은 고통의 의미로 다가올 수 있겠다. 성문 밖 이곳, 서소문 역사공원은 실제로 수많은 사람의 생목이 잘려 나간 곳이다. 무악재에서 발원해 내려온 만초천은 이곳에서 아현과 약현의 높은 지형을 넘지 못하고 선회하여 염천교 방향으로 흘러갔다. 물이 흐르던 이곳, 평평한 지역은 넓은 모래밭이 형성돼 있었다. 모래밭은 끔찍하게도 사람을 참수(斬首)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정확한 위치는 만초천의 여섯 개 다리 중 하나인 서소문역사공원내의 ‘이교(泥橋, 진흙다리-서소문역사공원에 이교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건너 만초천변 모래사장’이다. 당시 천주교를 믿었다 하여 바로 참수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형조, SC제일은행 자리에 있던 의금부, 동아일보 앞의 우포도청 등에서 고초를 겪다가 끝까지 배교하지 않으면 이곳으로 끌려온다. 참수가 확정된 사람은 마차에 실려 오는데, 사형

  • 'HYBE'를 들어 보셨나요?

    네이버증권>엔터테인먼트를 검색하면 여러 곳이 나오지만 단연 높은 주가(2021년 7월 21일 현재 298,000원, SM 60,800원, YG 56,200원, JYP 40,150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이 곳에 초기 투자해 2,500억원의 투자차익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주주로는 방시혁, 넷마블, 방탄소년단, 아리아나 그란데, 저스틴비버가 있습니다.이정도면 아시는 분들도 많아졌을 겁니다. 2021년 3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서 'HYBE'로 사명을 바꾼 곳 입니다.하이브(HYBE)는 음악에 기반한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입니다.국내 3대 연예기획사는 SM,JYP,YG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이브(HYBE)'라는 곳을 생소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이 곳은 국내에서 매우 큰 음반 및 음원제작, 유통 및 판매업을 하는 주식회사입니다.21년 3월 22일 용산 사옥에 입주한 '하이브'는 규모카 꽤 큽니다. 지상 19층 지하 7층, 임직원 1,000여명이 입주했습니다. 특히 컨셉이 멋집니다. ‘하이퍼 노마드(Hyper Nomad)’, 의미는 구성원 모두가 연결, 확장, 관계를 상징하는 하이브의 가치를 실현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레이블과 솔루션, 플랫폼을 축으로 확장하는 기업으로서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공간에 맞추어 사람을 ‘모아 놓은 공간’이 아닌,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모여 있는 공간’으로 계단을 통해 층과 층이 만나는 공간에는 구성원들의 리프레쉬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라이브러리 겸 라운지, 피트니스 등이 조성하는 능 다양성을 가진 구성원 각자가 영감과 편의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월세 20억을

  • 걷기의 재해석(11) - 역사를 찾아서 걷기

    108 어디를 걸을까 – 역사를 찾아서 걷기 역사를 찾아서 걷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에 역사를 더하는 역사적 행위이다. 걷는 행위가 물건을 가지고 이 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행위, 더 높은 지위와 특권을 누리면서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노예와 서민에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라고 강제된 행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때 자발적인 의지로 걸어가기는 인간이 드물게 하는 행위가 되었다. 걷기가 강제적이고 노동에서 자발적이고 쾌락이 되기까지는 무려 300여 만 년이 걸렸다. 인류는 300여 만 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했다. 그리고 약 2000년 전 인간은 불을 이용해서 청동기를 만들고, 문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역사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무도 흔쾌하게 대답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역사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우리 주위에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하늘 높이 쌓여있기도 하며, 우리 뱃속에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생겨나서 자유롭게 걷는데 300만 년이 걸렸고, 이 땅에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세우고 역사를 시작한 지 4353년이 되었다. 역사적인 행위로 역사적인 유물과 조상들을 만나는 역사 찾아 걷기야 말로 역사에 역사를 더한 역사적 행위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역사적 행위는 혼자 해도 좋지만 여럿이 하면 더 좋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는 삼남대로 영남대로 강화대로 그리고 의주대로를 걸으면서 시작했다. 1년 반에 걸쳐서 삼남대로는 과천 남태령에서 천안까지, 영남대로는 청계산에서 안성까지, 의주대로는 구파발에서 파주까지 그리고 강화도까지 걸었다. 장사하는 관계로 끝까지 그 길들의

  •  '유비 나이 47세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삼국지(三國志)의 결말은 비록 유비의 의도와는 다르게 났지만 삼국지의 등장인물 중 유비처럼 자수성가(自手成家) 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몰락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니 한 사람의 인생살이 치고는 성공한 셈이다. 관우 장비 조자룡 등 능히 1만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장수를 데리고도 마땅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공손찬, 유표, 여포 등 심지어 조조에게까지 의탁하는 삶을 살았던 유비는 어느 날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다름 아닌 와룡(臥龍)과 봉추(鳳雛)의 스승이었던 수경선생과의 만남이다. 수경선생은 ‘일찍이 유비 당신의 명성을 알고 있는데 어찌해서 이런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냐고 하자’ 유비는 ‘팔자(八字)가 박복(薄福) 해서 그렇다’고 에둘러 말을 한다. 이에 수경선생은 ‘유비 당신의 주변에 훌륭한 인재가 없기 때문이라며 와룡과 봉추 중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와룡은 제갈량을 봉추는 다름 아닌 방통을 말한다. 이후 그 삼국지의 최고의 장면 중 하나인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통하여 제갈량을 얻게 되니 유비의 나이 47세이다. 이후 제갈량의 역할로 적벽대전을 승리하여 천하 삼분지계를 실현하게 되고 유비에게는 인생역전의 계기가 된다. 그 후 제갈량은 사실상 유비의 멘토가 된다. 비록 20년이란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한나라 재건이라는 공통된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창업(創業)에 매진하게 된다. 제갈량이 있다는 융중을 찾아간 유비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만남을 실패한다. 이후 투덜거리는 관우와 장비를 나무라며 목욕을 재계하고 세 번째 제갈량을 만나러 간 것을 보면 수경선생을 통해

  • [여동재의 命理 산책] 고종황제와 스티브 잡스

    명리(命理)를 이해하는 여러 요소들 중 살(殺)과 형(刑)이라는 용어가 있다. 대표적인 살은 도화(桃花)살 백호(白虎)살 역마(驛馬)살 홍염(紅艶)살 등이 있으며 형에는 삼형(三刑)이라는 것이 있다. 도화살은 타인을 해치거나 물건을 해 칠 수 있는 기운을 말한다. 또한 색욕(色慾)이 높아 이로 인해 해를 당할 수 있다 하여 예로부터 부정적으로 믿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이성에게서 주목을 끌거나 매력이 있다 하여 연예인의 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영화 ‘사도(思悼)’가 직장인에게 주는 3가지 교훈

    ‘한중록(閑中錄)’에 충실하게 영조와 사도세자의 슬픈 역사를 다룬 영화 ‘사도(思悼)’를 보면서 비운의 사도세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연민 이전에 이를 통해 몇 가지 교훈을 깨달아 본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욕구나 조직의 메카니즘면에서는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결국 자신들의 상반된 성격코드를 서로에게 맞추지 못하고 협업에 실패한 쌍방과실의 리더십 실패사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만일 그들이 조금만 더 신중하고 사려 깊었더라면 부모가 자식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해괴망측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최소한 막을 수 있었으리라. 현대의 직장인들은 사도(思悼)를 통해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기다림의 미학을 가져야 한다. 세자에게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버지 영조의 숨막히는 요구와 질책에 주눅이 들고 아무리 서럽고 두렵더라도 책잡히는 일을 피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지 않았을까? 명색이 세자이니 명분을 축적하며 괴팍한 영조의 코드에 맞춰주고 끝까지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기다리는 것만이 해답이었을 터이다. 직장에서도 참고 기다리는 자들이 결국 생존게임에서 이긴다. 상사가 맘에 안 들어도 맞추려는 척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나보다 상사가 먼저 알아서 떠나가 버린다. 둘째, 지나친 논리적 명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조는 다혈질이지만 매우 치밀하고 냉정한 왕이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명분을 따지며 계획한 대로 집행한 것이다. 세손을 역적의 아들로 만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 세자가 변란을 도모했다는 혐의를 씌어 제거 명분을 확보하면서

  • 다시 징비록(懲毖錄)을 써라

    조선 14대 왕 선조는 무능했다. 겁쟁이에다가 울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전쟁대비도 제대로 못했고 전쟁이 나자 도망가기에 바빴다. 질투심은 또 왜 이렇게 많았는지 자신보다 명성이 높은 일선장수들과 의병장들의 평가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뿐이면 다행이게. 오히려 전쟁에서 진정 나라를 지킨 이들의 은공을 모르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행동했다. 상황을 보며 자기주장에 꼬리를 뺏다가 은근슬쩍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잔머리는 그의 주특기였다. 그러...

  • '에드바르드 뭉크' 만나, 문화적 허기를 채우다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는 사랑, 불안, 고독, 슬픔 등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모처럼, 문화적 허기를 채울 요량으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찾아, 한국 최초 뭉크 회고전인 ‘에드바르드 뭉크와 영혼의 시’를 관람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에 각각 소장된 유화작품 ...

  • 남한산성의 문화유산 등재, 기쁨 앞서 걱정이

    ‘남한산성’하면 으레 군 감방을 떠올린다. 혹 병자호란을 먼저 떠 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릴 적, 시골집 이웃 삼촌의 단골 레파토리는 ‘군대’였다. 월남에 파병되어 베트콩 잡던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다음으로 많이 들은 이야기는 ‘남한산성’ 경험담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말년 휴가 때 다이너마이트(폭약)를 몰래 갖고 나...

  • 낮지만 옹골지고 다이나믹한, 홍천 팔봉산

    여덟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홍천 팔봉산을 찾았다. 봉우리 숫자가 곧 산이름인 곳이다. 걸음했던 산들 중엔 충북 제천 삼봉산(910m), 경기 양주 칠봉산(506m), 그리고 진안 구봉산(1002m)의 이름이 그러하다. 홍천 팔봉산은 327m로 야트막하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험산인 팔봉산, 괜히 100대 명산이 아니다. 높이는 낮지만 옹골찬, 코스는 짧지만 다이나믹한 그런 산이다. 홍천 9경 ...

  • 스마트폰은 애물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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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목

    #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노래 중에 가곡 ‘비목(碑木)’처럼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 내는 것도 없는 것 같다. 1967년 화천 부근에서 군생활을 하던 초급장교 한명희(韓明熙)가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보고 작사한 것이라 한다. 전쟁이 끝난지 14년 후 였으니 당시 휴전선 부근 군사 도시 화천, 양구, 철원 일대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

  • 1박 2일 유유자적, 설악(雪嶽)을 품다...(下)

    중청대피소(1박)-대청봉-소청-희운각대피소-천불동계곡-비선대 쉼터-설악동 도톰한 삼겹살을 굽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폭풍 흡입했다. 걸신이라도 들린 듯 말이다. 1리터 짜리 ‘이슬’이 금새 동이 났다. 아쉬운듯 서로 멀뚱거리다가 돌연 C가 벌떡 일어섰다. “어딜 가려구?” “궁즉통(窮卽通)이라 했어~” 이슬?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를 자처하며 취사실 밖으로 나간 C가...

  • 떡쑥, 뚜껑별꽃, 뚜깔, 뚝새풀, 뚱딴지, 뜰보리수

    떡쑥 쟤는 떡이래요 쑥떡쑥떡아니에요 쟤는 쑥이래요 떡쑥떡쑥제 길도 하나 제대로 못 가면서뭔 말들이 남의 말들이 그리도 많은 세상인지 뚜껑별꽃 마음 편히 꼼꼼히 봐야만 예쁘게 보이지요개울가 풀속에 얼크러져 살아요그래도 하고 사는 것은 남들과 똑같아요하늘 향해 살다가 꽃피우고 씨맺고 살지요 뚜깔 한번 맛들이면 잊지 못하는 나물이라는데한번 살펴보면 그리도 예쁜 꽃이라는데한여름에 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뚜깔은 기억의 언저리에서만 ...

  • 1박 2일 유유자적, 설악(雪嶽)을 품다...(上)

    신새벽, 헤드랜턴 불빛으로 시작하는 이른바 ‘무박산행’ 몇 번의 설악산 산행은 늘 그렇게 ‘무박’으로 다녀왔다. 동 트기 전부터 왼종일을 쫓기듯 허둥대며 걷기만 하다보니 정작 설악의 속살을 제대로 탐할 수 없었기에 1박을 하면서 더러 게으름도 피워가며 여유롭게 걷고 싶었다. 그리하여 호시탐탐 1박을 노리며 예약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이처럼 지리산이든 설악산이든 주말의 대피소 예약은 ...

  • 사랑엔 공정거래위원회가 없다

    사랑엔 공정거래위원회가 없다 사랑엔 사기죄가 없다 사랑엔 거짓말 참말 구별이 없다 사랑엔 어느 누구의 책임도 없다 전등사 도편수야 술집여자 손 만져보았고 허벅다리 눈길 한번 주었다면 그걸로 네 봉급 다 날렸다 한들 바보처럼 울지 말거라 더군다나 원한에 사모쳐 사랑하던 여자를 나녀상으로 깎아 대웅전 지붕을 이게 하지 마라 사랑에 사기가 없다면 이 세상 얼마나 삭막하랴 사랑에 공정거래를 적용한다면 갓난애도 웃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