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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터리 '아린의 시선'에 팍 꽂히다

    마당 한편에 피워 놓은 모깃불의 매캐한 연기가 허공에 번져갔다. 서서히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멍석에 누운 소년의 시선은 허공에 흩어졌다. 소년은 하루거리 열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용하다는 이웃 할매를 불러 치성을 드렸으나 차도가 없었다. 열꽃 핀 소년의 얼굴을 지켜보는 엄마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갔다. 소년의 눈자위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어둑한 허공을 한 마리 새가 날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소리가 꿈결처럼 아득...

  • 정선 각희산 올라, '脫메르스'와 '단비'를 빌다

    몹쓸 놈의 '메르스'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을 줄이야. 모임 연기와 행사 취소를 알리는 문자가 '줄줄이'다. 그런데 유독 한 군데선 연락이 없다. 그대로 진행 할 모양이다. 열흘 전 이미 일요산행(6월 7일)으로 정선 각희산을 예약해 놓았다. 가?… 말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너무 호들갑 떨 것 없다, 고고씽!' 평소대로라면 산꾼들로 북적였을 산행버스 출발지가 썰렁했다. 산악회 버스가 수십 대 씩 ...

  • 日규슈여행-제7신... '유후인'과 '텐만구'를 유유자적하다

    가마도地獄을 빠져 나와, 향한 곳은 그림 같은 마을, 유후인(由布院). 본격 거리 투어에 앞서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레스토랑에 들러 현지食으로 끼니부터 챙겼다. 오늘도 날씨는, 예외 없이 딴지를 건다. 하늘은 잔뜩 찌뿌둥해 있다. 언제라도 한바탕 비를 뿌릴 기세다. 유후다케(由布岳)산으로 둘러싸인 유후인 마을에 들어섰다. 유후인이 온천마을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다. 1955년 경  서른여섯 젊은 나이의...

  • '가리베가스'를 아시나요?

    '가리봉오거리'가 궁금했다. 구로공단 반세기를 기념하여 '가리봉오거리'를 서울 역사박물관 안으로 옮겨다 놓았다. 박물관 측은 “지난 시대 구로공단에서 젊음을 보낸 수많은 분들의 땀과 꿈, 인고와 열망을 나누고자 특별전을 기획했다”고 한다. 더하여 “이를 통해 오늘의 우리가 이들에게 빚지고 있음을 기억하고자 함”이란다. 허허벌판이던 구로구 가리봉동에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4년 4월부터다. 이후 순차적으로 2, 3공단이 ...

  • 日규슈여행-제6신...제 발로 地獄의 문턱을 넘나들다

    버스는 큐슈 전통 료칸이 모여 있는 기구치(菊池) 계곡의 초입, 기쿠치관광호텔(Kikuchi Kanko Hotel)로 들어섰다. 빗줄기는 잦아들 줄 모르고 왼 종일 일행을 따라 붙었다. 호텔 앞마당이 협소해 바깥에서 손님을 승하차시켜야함에도 불구, 운전기사는 버스 출입구를 최대한 호텔 현관 가까이에 대느라 몇 번의 전후진을 해가며 안간힘을 쏟는다.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는 기사의 깨알 같은 배려가 돋보였다. 가이드는 호텔로비...

  • 품 넓고 골 깊은 지리산 능선길을 걷다...<下>

    벽소명월 교교하니 삼겹살맛 일품일세 다섯山友 둘러앉아 밤늦도록 희희낙락 낑낑대며 챙겨온酒 하룻밤새 거덜났네 혹시몰라 꼬불쳐둔 팩소주가 있긴한데 내일저녁 생각해서 바닥났다 시치미뚝 그제서야 주섬주섬 자리털고 일어나네 이른 새벽, 선잠에서 깨어 잠시 뒤척이다 침상을 빠져나왔다. 푸른빛 새벽 어스름이 벽소령대피소를 감싸고 있다. 목구멍이 칼칼했다. 물을 길러 가기 위해 취사장 아래로 난 가파른 계단을 내려섰다. 장딴지는 뻐근하나 다행...

  • 품 넓고 골 깊은 지리산 능선길을 걷다...<中>

    -반야봉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 숨 고르며 땀 훔치는 사이, 뒤따르던 산객들이 앞지른다. “먼저 지나갑니다. 쉬었다 오십시오.” 앞질러 간 산객들이 이번엔 저만치 너른 바위에 앉아 땀을 훔친다. “여기서 또 뵙네요. 安山 하십시오.” 이렇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덕담도 주고받는다. 산길에 서면 모두가 배려심이 넉넉해지나 보다. 오늘 걸음은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 16.7km이다. 삼도봉(1...

  • 품 넓고 골 깊은 지리산 능선길을 걷다...<上>

    5월 첫날, 지리산이 열렸다. 4월 끝날까지 산불 경방(警防)기간으로 인해 입산이 통제됐었다. 몇 번의 지리산 종주산행은 항상 1박 2일이었다. 이번만큼은 쫓기듯 걷기보다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지리산 산길이 열렸어도 반드시 챙겨야 할 게 있다. 대피소 예약이다. 사전 예약 없이 대피소 이용은 불가하다. 대피소 주변에서의 비박 역시 금지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예약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평일은 몰라도 연휴나 주말, 대피소 ...

  • 日규슈여행-제4신... 맥주공장에 들러 엔젤링을 즐기다.

    “서울타워는 못 올라봤어도 도쿄타워는 올라 봤다” “한강 유람선은 못 타봤어도 세느강 유람선은 타 봤다” 오늘 딱 그 짝이다. 우리나라 맥주공장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뜬금없이 일본 맥주공장을 견학하게 생겼으니, 나 원 참~ 일행을 태운 버스는 난조인(南藏院)이 있는 마을, 사사구리마치(篠栗町)를 벗어나 아사히맥주회사 하카다 공장으로 향했다. 아사히(Asahi) , 기린(kirin), ...

  • 日규슈여행-제3신... 봄비 촉촉한 '난조인(南藏院)'을 거닐다

      창문을 열었다. 어스름이 걷힌 도시의 모습이 비바람 탓에 스산하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모양인가, 창밖을 보니 봄비치곤 요란하다. 출근길 시민들은 우산이 뒤집힐까 방패처럼 들고서 종종걸음을 친다. 티비를 켰다. 큐슈 곳곳에 오늘도 내일도 비가 내릴거란다. 사흘 내리 숙소를 옮겨 다녀야기에 가방부터 꾸려 놓고서 짝꿍과 함께 호텔 내 레스토랑을 찾았다. 뷔페식 브렉퍼스트다. 오믈렛과 소시지, 베이컨과 훈제연어를 담고 우리의 청국장...

  • 日규슈여행-제2신... 팝콘처럼 터져버린 벚꽃에 취하다

    후쿠오카의 쇼핑 명소, 캐널시티(Canal City)에서 눈요기를 끝내고 벚꽃이 절정이라는 후쿠오카 성터로 이동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때마침 후쿠오카는 사쿠라 마츠리(Sakura Matsuri, 벚꽃축제) 기간이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성터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 들었다. 깔판과 도시락을 챙겨든 가족단위 상춘객들, 까만 정장의 퇴근 길 샐러리맨들, 그리고 벚꽃 보겠다고 현해탄을 건너온 우리 일행들까지. 일본의 도시...

  • 日규슈여행- 제1신, 끄물끄물한 날, '후쿠오카'에 발을 디디다

    “혹 창가 비상구 쪽 좌석이 있나요?” 다행히도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두 좌석(42A, 42B)을 배정 받았다. 비상구가 있는 좌석은 앞뒤 간격이 한 뼘 정도는 넓다. 그렇게 짝꿍과 함께 후쿠오카行 비행기에 올랐다. 저가항공 국제선 이용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림머리와 스카프를 맨 샤방샤방한 모습에 익숙해진 탓일까, 연두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꽁지머리 여승무원이 낯설다. 이륙 후 곧이어 물을 담은 종이컵과 삼...

  • 올망졸망한 산길, 무의도 호룡곡산

    이른 아침 커튼을 올려 창밖을 보니 또 뿌옇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은 오데로 가고 언제부턴가 우리의 봄은 3일은 황사, 4일은 미세먼지, 이름하여 ‘삼황사미’다. 티비 속 기상캐스터는 가급적 바깥 활동을 자제하란다. “그래도 금쪽같은 주말인데…”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근교 섬 산을 검색했다. 그렇게 낙점한 곳이 무의도 호룡곡산. 나홀로 후딱 다녀올 요량으로 승용차를 이용키로 했다...

  • 문경의 진산, 주흘산 有感

    버스 안에서 졸다 깨어 보니 ‘치악휴게소’다. 치악휴게소라면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했단 얘긴데… 오늘의 산행지는 분명 ‘문경 주흘산’이다. 그렇다면 여주휴게소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바꿔 타야 맞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건 탑승 산객,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래, 그럴수 있겠다. 자고나면 없던 길도 생겨난다. 내가 모르는 또다른 길을 버스기사는 알고 있을 게다....

  • 종이신문의 매력(魅力) 혹은 마력(魔力)

    아침에 눈뜨면 맨먼저 롤커튼을 올린다. 정남향 베란다를 차지한 야생화에 아침햇살을 쬐어 주기 위함이다. 다음은 현관문을 열어 조간신문을 맞는 일이다. 잠옷바람에 부시시한 몰골이라 앞 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현관문을 빼꼼 한 뼘 열어 살핀 다음, 잽싸게 바깥 벽에 매달아 놓은 주머니에서 신문을 낚아챈다. 서늘한 바깥 공기가 스며든 두툼한 신문을 펼쳐든다. 묵직한 견출고딕체의 1면 헤드타이틀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더러는 살맛 나는 ...

  • 부여 천보산과 천덕산을 이어 걷다

    부소산에 간간이 내리는 부슬비 낙화암에서 애달피 우는 소쩍새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백마강에 고요히 잠긴 달빛 백제탑의 저녁노을 규암나루에 들어오는 돛단배 수북정의 봄날 아지랑이 구룡평에 내려앉은 기러기떼 잘 알려진 부여의 여덟가지 풍경 즉, 부여팔경입니다. 그런데 결코 팔경에 손색없는 풍경이 하나 더 부여에 있습니다. ‘천보산의 희귀한 바윗길’이지요.(물론 지극히 개인적 견해임) 산꾼들 사이에 이 산...

  • 조령5악에 꼽히는 충주 포암산에 오르다

      ‘하늘재’고갯마루를 들머리로 포암산을 오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스가 살짝 바뀌었다. 5월 15일까지 봄철 산불조심기간으로 하늘재에서 포암산 구간이 입산통제라는 산방 측의 안내에 따라 하늘재 숲길이 시작되는 ‘미륵사지’ 입구에서 왼쪽 산비탈로 숨어? 들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정보엔 약간의 미스가 있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가 봄철 산불조심기간인 것은 맞...

  • 겨울 끝자락에 담양 추월산을 품다

    김치는 어느만큼 익어야 맛이 난다. 홍어 역시 오래 삭혀야 제맛이다. 여러날 묵히면 感이 뚝 떨어지는 게 있다. 산행기록이다. 담양 추월산을 다녀온게 언제였나? 2월 1일이다. 꼬박 한달을 묵혀 산길을 더듬자니 흐릿하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업무가 바빠서이고 실토하자면 게을러진 탓이다 사무실서 내다보이는 창밖은 봄기운이 살랑대는데 찍어온 사진 폴더를 열어보니 한기가 가득하다. 秋月山은 전남 담양군과 전북 순창군을 가로지르는 산이...

  • 서울역 高架, 뜨거운 감자로...

    사진제공=서울시 서울역 고가 위를 달리던 차량들이 사라졌다. 17미터 높이의 고가 위엔 때 아닌 시민들로 북적였다. 작년 10월 12일 '서울역 고가 시민개방 행사'가 서울시 주최로 열렸다. 1970년 준공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시민들이 거닐 수 있도록 개방된 적이 없었다. 44년 만에 처음 있었던 일이다. 이보다 20일 전인 9월 2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 시장은 지난번 선거 때 '서울역 고가 하이...

  • '발왕'에 이끌려 평창 발왕산에서 발품을...

    평창 발왕산에는 아픈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산아래 고을에 발이 크고 기골이 장대한 청년, ‘발왕’이 살고 있었답니다. 몸집이 너무 커 장가를 못 가 여러 해 애 태우던 중, 어느날 우연히 ‘옥녀’란 처녀를 만나 사랑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둘은 결혼을 약속하였으나 두 집안 모두 궁핍해 살 집은 고사하고 땟거리 조차 힘들었습니다. 결혼에 앞서 비용 마련을 위해 둘은 각각 南으로 東으로 길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