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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만해 ‘한용운’을 만난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구를 되새기며 백악산 성곽길 따라 마을로 내려온다. 도성안과 밖은 기나긴 성벽을 경계로 나뉜다. 도성 안은 북촌인 삼청동. 도성 밖은 북정마을 성북동이다. 골목골목을 내려오니 삼각산 북쪽을 바라 본 집 한 채가 향나무와 함께 있다. 바람은 차갑고 눈발이 휘날린다. 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한옥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곳. 바로 심우장(尋牛莊)이다.   만해 한용운의 생애 유일한 집이다. 택호를 심우장으로 정하고 그곳에서 11년 집필생활을 하며 삶을 마무리 했다. 나를 찾고 나라를 되찾으려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독립운동을 했다. 아쉽게도 독립을 보지 못한 채 그의 시구처럼 님은 갔다. 하지만 심우장은 86년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소를 찾듯 나를 찾고, 나라를 찾듯 역사를 찾은 곳이다. 3.1운동 100주년에 가족과 함께 심우장을 가고 싶다.   1879년 충청도 홍성에서 태어난 한용운은 월정사와 백담사에서 연곡스님을 만난다. 불경 공부와 참선에 열중하며 넓은 세계를 찾아 끊임없이 연마했다. 불교의 개혁과 불경의 대중화를 위해 주제별로 역은 책도 편찬한다. <불교대전>은 불경을 엮은 최초의 책이다. 불교 근대화의 선구자다. 1918년 잡지 <유심>에서 계몽적인 글과 문학에 관심을 표출한다. 그 당시 최남선과 최린, 백용성이 글을 기고하며, 1919년 3.1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쌓은 교두보다.   민족대표 33인 중 백용성과 한용운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만해 한용운은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에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