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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숙함은 오직 연습에서 나온다

    아버지가 생을 마감했다. 음력으로 2003년 9월 23일. 올해가 20주기다. 부음은 거래처와 점심에 폭탄주를 많이 마셔 잠깐 졸고 나서 들었다. 더 사실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웠다. 본가로 가는 차 안에서 전화로 장례식장 등 장의 절차 논의를 끝냈다. 아버지는 당신의 방에 언제나처럼 그대로 누워계셨다. 눈을 뜬 채 미간을 약간 찌푸린 모습이 당장 일어나 지난주에 오지 않은 것을 질책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못 할 짓이 사람 기다리는 걸 텐데 찾아뵙질 못한 게 후회됐다. 뒤이어 도착한 남동생에게 어머니가 눈을 감겨드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중풍으로 오른쪽을 쓰지 못하는 아버지는 5년째 누워 지냈다. 말씀하지 못해 주로 한자로 필담(筆談)을 나눴다. 머리맡의 잡기장에는 나와 지난주에 나눈 뒷장에 한 글자만 쓴 장이 더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자다. 남기고 싶은 마지막 필담은 그렇게 유언이 됐다. 누워서 종이를 보지 못하고 떨리는 왼손으로 쓴 글씨는 글자라기보다 차라리 그림이었다. 획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나는 바로 읽었다. ‘익힐 습(習)’자였다. 성격 급한 아버지를 닮은 속필(速筆)이자 달필(達筆)을 나는 언제나 글자를 마무리하기 전에 알아맞혔다. 한참이나 그리듯 썼을 그림 같은 글자가 뭘 뜻하는지는 그래서 대번에 알아봤다. 워낙 여러 번 말씀하셨던 글자였기 때문이다. 틈날 때마다 아버지가 가장 많이 인용한 고사성어가 ‘여조삭비(如鳥數飛)’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들은 성어다. ‘셀 수(數)’ 자는 여기서는 ‘자주 삭’으로 읽는다. ‘새가 자주 하는 날갯짓과 같다’라는 말이다. 쉬지 않고 배우고 익힘을 비유한 말이다. 아

  • 책은 숨 쉬듯 읽고 또 읽어라

    아버지 앞으로 책이 우편으로 왔다. 펴보지 않고 만지기만 하다 책상에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봉투를 건네주며 책값을 우편환으로 끊어 보내라고 했다. 때로 선물이 들어오면 아버지는 같은 품목으로 사서 꼭 보냈다. 그러나 책 선물은 처음이었다. 며칠 지나도 책상 위의 책은 펴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한 달쯤 지나 책을 보니 물에 불은 듯 두꺼웠다. 선물 받은 책은 군데군데 볼펜으로 끝도 없이 메모가 되어 있었다. 여백이 없는 데는 메모한 종이를 덧대 여러 장을 겹쳐 붙여 본래 보다 두 배는 두꺼웠다. 책값을 보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만지는 걸 본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읽기 전에 생각하고, 읽으면서 생각하고, 읽고 나서도 생각해라. 쉽게 읽은 책은 쉽게 빠져나간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여러 번 읽을 책을 찾아 읽어라.” 아버지는 철저하게 발췌독(拔萃讀)했다. 닥치는 대로 읽는 남독(濫讀)이지만, 따로 읽어야 할 책은 바로 펼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제목으로 책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를 먼저 생각해본다고 했다. ‘다리’를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소재의 일반성을 먼저 생각해본다. 집 앞의 징검다리부터 금문교, 오작교까지를 떠올린다. 그런 다음 다리의 원관념, 즉 ‘건네준다’를 생각하면 우체부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님까지를 떠올 릴 수 있다. 다리를 ‘이편에서 저편의 더 너른 공간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빚은 산물’로 보고 내가 겪었든 겪지 않았든 상상해보며 저자만이 경험한 ‘특수성’을 염두에 둔다.” 아버지는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생각한 부분은 빠르게 읽고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은 정독하며 생각을 메모했다. 반드시 완독(完讀)

  • 너를 위해 살아라

    이제껏 아버지만큼 삼국지(三國志)를 탐독한 이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가 쓴 삼국지 번역본을 읽었다. 가끔 보면 밑줄을 긋기도 하고 여백에 메모를 깨알같이 했다. 결혼해서 한집에 살 때다. 출근 인사를 드리자 갑자기 삼국지 일본어판을 구해오라고 했다. 동경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며칠 걸려 구해드렸다. 그러고 얼마쯤 지나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연의(三國演義) 중국어본을 대만에 있는 지인을 통해 구해드렸다. 그때 아버지는 책 심부름시키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삼국지를 읽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고 했다. 월탄(月灘) 박종화(朴鐘和)의 월탄삼국지(月灘三國志)를 구해드리자 비로소 만족해했다.  아버지 방을 청소하다 깜짝 놀랐다. 책 네 권을 펴놓고 노트에 삼국지를 만년필로 새로 쓰시고 있었다. 이미 다른 노트에는 등장인물별로 발언록을 따로 만들어 놓은 걸 보고 많이 놀랐다. 책에 다 적지 못한 번역 오류 등을 바로잡은 노트도 있었다. 적어도 몇 달은 족히 걸렸을 작업량이었다. 심하게 놀란 건 달력 뒷면을 이어붙여 삼국지에 나오는 모든 전투상황도를 그린 지도를 보고서였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버지에게 “대단하십니다”라며 삼국지를 여쭙자 밤을 밝히며 하신 말씀이다. “번역서로는 월탄의 글이 좋다. 요시카와는 독자를 너무 많이 가르치려 한다. 그래서 내가 삼국지를 새로 쓰고 있다. 나관중이 저지른 실수도 여럿 있다. 특히 역사는 당시 인물이 겪은 바를 독자가 따라 해보는 방식의 추체험적(追體驗的) 기술을 해야는 데 소설적 가미가 너무 심하다”

  • 마음에 없는 인사치레는 하지 마라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아버지가 느닷없이 물었다. 은행에 다닐 때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가 담배 피우는 동안 길에서 지나치는 직장 동료들에게 내가 두어 번 한 말이었다. “별일 없지? 언제 밥 한 번 같이 하자구”라는 말을 아버지가 지켜보다 지적했다. 점심시간에 만나는 직장 동료들인데 딱히 할 얘기는 없어 인사치레로 하는 거라고 강변했다. 아버지는 바로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라며 역정을 냈다. 가까운 다방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여전히 큰소리로 ‘익은 밥 먹고 선소리한다’라면서 야단쳤다. 아버지는 실없는 말을 하는 언행을 크게 나무랐다. 또 지킬 마음도 없이 약속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상대편도 어차피 약속으로 제 말을 받아들이지는 않는 동료 간의 통상인사법이라고 재차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그중에는 네 말을 곧이들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지킬 생각도 없는 약속을 하는 가벼운 언행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앞으로 상대편이 네가 하는 말을 그 정도로만 여기는 게 더 큰 문제다”라고 질책했다. 아버지는 “지금껏 자라며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에 누가 너를 더 많이 때렸는지 아느냐? 어머니가 너를 더 많이 때렸다. 그러나 너는 내가 때린 것만 기억날 것이다. 동물은 먹이를 주는 이에겐 적의(敵意)를 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 식사비즈니스를 하는 건데 그 중요한 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아버지는 못마땅해했다. 그때 일러준 고사성어가 ‘식언(食言)’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사에서 비롯된 건 그날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식언은 ‘춘추좌씨전(春秋

  • 잘못한 일은 반드시 바로잡아라

    아버지가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났다. 대학에 다닐 때다. 집에 온 나를 본 어머니는 떨리는 손을 마주 잡으며 “아버지가 한양대병원에 입원하셨대. 비서가 사람을 시켜 은밀히 알려줬다. 난 발이 안 떨어져 못 가겠다”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어머니는 눈물만 흘렸다. 곱돌아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아들을 어머니는 오래 지켜봤다.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으나 아버지 이름으로 입원한 환자는 없었다. 다행히 회사의 낯익은 직원 눈에 띄어 건장한 청년 몇이 문을 지키는 특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아버지를 만났다. 멀리 한강과 관악산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이 지고 야경으로 바뀔 때까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버지는 선 채로 말씀하셨다. 때로 흥분해 소리치기도 했지만, 그날 들은 몇 가지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고 두고두고 새길 말씀을 많이 했다.  창동 공장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생산하는 을지로 본사는 귀대인사차 딱 한 번 들렀을 때 ‘아버지 회사로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만큼 규율이 엄격했다. 안내받아 지나며 만난 직원들은 목인사를 했고 사무실은 멀리서 봐도 정갈했다. 창업이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유독 어렵게 일군 아버지 회사는 1차 예금 부족으로 쉽게 부도가 난 데 이어 며칠 뒤 최종부도 처리됐다. “박 전무 그 친구 내가 그렇게 잘 봐줬는데 배신했다. 친동생보다 더 믿고 모든 걸 맡겼는데”라고 말문을 연 아버지는 “회사 자금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라며 부도에 이른 경위를 설명했다. 아버지는 “소인이 허물을 범하면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허물을 덮으려 꾸민다. 바로 들통 날 거짓을 스스럼없이 하는 자

  • 짠맛 잃은 소금은 소금이 아니다

    일곱 살에 들어간 초등학교 입학식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밖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다만 행사가 끝난 뒤 어머니와 제천 경찰서에 수감된 아버지 면회를 갔던 기억은 또렷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를 유치장이 떠나갈 만큼 큰소리로 야단쳤기 때문이다. 지인의 무고(誣告)로 조사를 받느라 아버지가 입학식에 오시지 못했다는 얘기는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 들었다.그렇게 소리치던 아버지가 껄껄껄 웃으며 저만큼 물러서 있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셨다.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몇 번이고 다독여줬다. 나는 그게 아버지가 자식을 칭찬하는 방식임을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왜 웃으셨냐고 어머니께 물었다. 아버지가 입학식이 어땠느냐고 묻기에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마디씩 질문하며 면접을 봤다고 하셨단다. 내게는 "소금이 짜니 싱겁니?" 하고 물었는데 당당하게 "싱거워요"라고 답을 했다고 하자 아버지가 크게 웃으셨다고 했다.몇 해 지나 불현듯 그때 생각이 떠올라 아버지에게 왜 그날 크게 웃으셨느냐고 여쭸다. 그때 하신 말씀. "영어(囹圄)의 몸이 돼 아비 노릇을 하지 못한 걸 네가 힐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그 또한 나답지 못한 언행에서 비롯된 걸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듯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면 아버지가 아니다. 이름에 맞는 정체성을 갖추는 노력은 한시 반때라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은 '명(名)을 바로잡는다'라는 뜻인 '정명(正名)'이다. '대상의 이름과 그 본질이 서로 부합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당

  • '논어의 나라' 중국, 유교사상이 독재 강화 수단?

    '논어'(論語)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논어는 유가 문화의 보배와 자산으로, 세세 대대로 중국인의 사상과 행동 준칙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논어는 모두 20편 492장 약 1만5000자 정도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 편찬한 어록체의 문집입니다. 비교적 적은 분량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폭이 넓고 깊이가 심오합니다. 춘추시대 제자백가 서적 중에서 동양사상의 정화로 꼽히는 책이기도 합니다.논어는 공자와 유가(儒家)의 정치적 주장을 비롯해 윤리 사상, 도덕관념, 교육원칙 등을 비교적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논어는 생동감 있고, 언어가 평이하고 간결하며, 이해하기 쉽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논어 핵심 내용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이지만, 인생과 사회의 심원한 원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서양의 기독교사상이 유럽과 미국 정신문명의 중심에 있다면,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논어의 사상입니다. 논어는 공자의 삶과 세계관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공자에 대한 평가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열전'의 '공자세가'(孔子世家)가 참고할 만합니다.논어에는 공자 삶이 생동감 있게 기록돼 있고, 현대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는 구절이 많습니다. 논어에는 배우자는 학(學)이 64번이나 나옵니다.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공자의 호학 정신이 나타나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논어에는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마오(毛)도 묻는 것은 수치가 아니(不

  • 오늘을 깨우는 예쁜 이야기

    늙는다는 건, 나이와 외모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속에 이상이 없을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삶의 열정이 사그라지는 것이 곧 죽음이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화창한 봄날이 계속되는 것 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도 없다.” 즉 의미없이 지속되는 하루를 경계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 순간을 즐겨라.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 착 붙는 중국어 회화: 자기도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己所不欲,勿施于人 Jǐsuǒbúyù, wùshīyúrén 자기도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A: 为什么人际关系那么难? A: Wèi shénme rénjì guānxi nàme nán? A: 웨이 션머 런지 꽌시 나머 난? B: 只要能做到己所不欲,勿施于人,那可能就会简单多了。 B: Zhǐyào néng zuò dào jǐsuǒbúyù, wùshīyúrén, nà kěnéng jiù huì jiǎndān duō le....

  • 고물상 정사장의 어둠속 삶

    정 사장을 만난 4년 전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 진한 니코틴 냄새를 풍기며..50대 중반의 나이를 훌쩍 넘은 듯한 얼굴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현재 하시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생각대로 잘 되고 있지 않네요. 다른 일을 고민해볼까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희망사항이지 특별히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

  • 본성이 지배하는 세계는 악하거나 선하거나

    내 방식의 삶을 살되, 타인도 자신의 삶을 살게 두자. 마음을 타인에게 열자. 조용히 전진하자. 삶에 여유를 찾자.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쉬자. 젊은 세대에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자.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자. 부정적 태도를 버리자. 개종시키려 하지 말자. 평화를 위해 행동하자. 프란치스코 교황(79세, Francis Jorge Mario Bergoglio, 2013.03~제 266대)이 제시한 '행복 10계명'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