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위

  • 약속, 이우걸

    약속 이우걸 가을은 가을은 스님 같은 가을은 제 가진 육신마저 다 벗고 돌아서는 날 그 불길 그 부산 끝에도 사리 같은 씨앗 남겼네. [태헌의 한역] 約束(약속) 秋也秋也與僧若(추야추야여승약) 了脫肉身離此地(요탈육신리차지) 盡經烈火忙亂後(진경열화망란후) 終遺種子如舍利(종유종자여사리) [주석] *約束(약속) : 약속. 秋也(추야) : 가을은. ‘也’는 강조의...

  • 가을 들녘에 서서, 홍해리

    가을 들녘에 서서 홍해리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태헌의 한역] 立於秋野(입어추야) 眼盲無物不佳麗(안맹무물불가려) 耳聾無聲不恍恍(이롱무성불황황) 棄心一切皆盈滿(기심일체개영만) 盡授於人立虛壙(진수어인립허광) 欲淚心...

  • 가을밤, 김시탁

    가을밤 김시탁 언어가 시를 버리고 시가 시인을 버린 채 사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책갈피 속 낙엽으로 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밤 내 영혼의 퓨즈가 나가 삶이 정전된 밤 [태헌의 한역] 秋夜(추야) 言語棄詩歌(언어기시가) 詩歌棄詩手(시가기시수) 言語與詩歌(언어여시가) 終向辭典走(종향사전주) 自以書中葉(자이서중엽) 爲扃固關牖(위경고관유) 吾魂熔絲燒(오혼용사소) ...

  • 감, 허영자

    감 허영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태헌의 한역] 枾(시) 如此淸雅秋陽裏(여차청아추양리) 無論是誰不得已(무론시수부득이) 只得加歲又明理(지득가세우명리) 吾人行年如桃李(오인행년여도리) 生澁腥臭血亦是(생삽성취혈역시) 只得熟爲紅甘枾(지득숙...

  • 만월(滿月), 윤지원

    만월(滿月) 윤지원 행여 이 산중에 당신이 올까 해서 석등(石燈)에 불 밝히어 어둠을 쓸어내고 막 돋은 보름달 하나 솔가지에 걸어 뒀소. [태헌의 한역] 滿月(만월) 或如君來此山中(혹여군래차산중) 石燈點火掃暗幽(석등점화소암유) 新升一輪三五月(신승일륜삼오월) 至今方掛松枝頭(지금방괘송지두) [주석] * 滿月(만월) : 보름달. 或如(혹여) : 혹시, 행여. /...

  • 한때는 나도, 김지영

    한때는 나도 김지영 한때는 바위였다고 얘기하지 마라 지금 돌멩이면 돌멩이로 사는 거다 아이들 손에 들린 짱돌이 되는 거다 한때는 돌멩이였다고 말하지 마라 지금 자갈이면 자갈로 사는 거다 한때는 자갈이었다고 애써 말하지 마라 지금 모래알이면 모래알로 사는 거다 뜨거운 백사장에서 몸을 뒤척이며, 한때는 무엇이었다고 생각도 하지 마라 한때는 나도 …… [태헌의 ...

  • 당신에게 말 걸기, 나호열

    당신에게 말 걸기 나호열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태헌의 한역] 攀話於君(반화어군) 此世無醜英(차세무추영) 亦無帶怒花(역무대노화) 有香因香麗(유향인향려) 有形緣形嘉(유형...

  • 중앙선 타고 가며, 이기철

    중앙선 타고 가며 이기철 안동 지나 제천 간다 내려다보면 한 잎 호박잎에도 폭 싸일 초등학교 저 창문과 교실 위로 무수한 화요일이 지나갔구나 내 일곱 살, 저 교실에서 책 열지 않았으면 긴 일생, 무거운 언어의 짐 지지 않고 살아도 되었을 것을 【태헌의 한역】 乘中央線列車而行(승중앙선열차이행) 今過安東向堤川(금과안동향제천) 俯看下有校一座(부간하유교일좌) 小...

  • 추석, 양광모

    추석 양광모 연어처럼 돌아간다 어린 새끼들을 이끌고 오래전 떠내려 왔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유년의 비늘들 빈 주머니면 어떠리 내일은 보름달이 뜨리니 가난한 마음에도 달빛은 한가득 밤이 깊을수록 송편은 점점 커지고 아비 어미 연어 얼굴에는 기쁨이 사뭇 흘렀다 [태헌의 한역] 秋夕(추석) 回歸似鰱魚(회귀사연어) 但携稚子身(단휴치자신) ...

  • 코스모스, 김진학

    코스모스 김진학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 간밤의 바람에 행여 허리라도 다쳤나 네가 있는 강둑을 한걸음에 왔는데 거울 같은 하늘에 하늘 닮은 코스모스 내게 하는 인사말 나 괜찮아 가을이잖아 [태헌의 한역] 秋英(추영) 吹則恐飛纖弱身(취즉공비섬약신) 昨夜有風腰或辛(작야유풍요혹신) 一路直到汝居岸(일로직도여거안) 旻如鏡子汝肖旻(민여경자여초민) 却投候語向我云(각...

  • 쉬는 날, 김용택

    쉬는 날 김용택 사느라고 애들 쓴다 오늘은 시도 읽지 말고 모두 그냥 쉬어라 맑은 가을 하늘가에 서서 시드는 햇빛이나 발로 툭툭 차며 놀아라 [태헌의 한역] 休日(휴일) 君輩圖生費心多(군배도생비심다) 今日只休詩亦置(금일지휴시역치) 立於淸秋靑天邊(입어청추청천변) 脚蹴殘陽喫遊戱(각축잔양끽유희) [주석] * 休日(휴일) : 쉬는 날. 君輩(군배) : 그대들. /...

  • 자화상, 박형진

    자화상 박형진 마당 앞에 풀이나 뽑느라 아무것도 못 했어 거울 앞에 서면 웬 낯선 사내 오십 넘겼지 아마? [태헌의 한역] 自畵像(자화상) 拔草場圃上(발초장포상) 到今無所竣(도금무소준) 對鏡有一夫(대경유일부) 庶或過五旬(서혹과오순) [주석] * 自畵像(자화상) : 자화상. 拔草(발초) : 풀을 뽑다. / 場圃(장포) : 채마밭, 정원, 마당. / 上(상) ...

  • 어머니가 고등어 굽던 날, 강성위

    어머니가 고등어 굽던 날 강성위 어머니가 고등어 굽던 날 할아버지 친구분께서 느닷없이 찾아오셨다 온 집안이 고등어 냄새뿐이어도 그날 난 겨우 지우개만한 고등어 토막을 먹었다 너무 작아 눈물 흘리며 먹었다 [태헌의 한역] 母親燒炙鯖魚日(모친소자청어일) 母親燒炙鯖魚日(모친소자청어일) 祖父友人忽來宿(조부우인홀래숙) 全家遍滿熏魚香(전가편만훈어향) 愚生僅食如棗肉(우...

  • 어둠이 되어, 안도현

    어둠이 되어 안도현 그대가 한밤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한역] 爲黑暗(위흑암) 吾君誠願作華星(오군성원작화성) 的的悠悠通宵在(적적유유통소재) 吾人須欲爲黑暗(오인수욕위흑암) 廢眼掩耳立君背(폐안엄이립군배) [주석] * 爲(위) : ~이 되다. / 黑暗(흑암) : 어둠, 암흑. 吾...

  • 웃음의 힘, 반칠환

    웃음의 힘 반칠환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태헌의 한역] 笑之力(소지력) 攀緣薔薇今越牆(반연장미금월장) 身犯惡事破顔愷(신범악사파안개) 人人忘捕皆隨笑(인인망포개수소) 花朶踰垣何非罪(화타유원하비죄) [주석] * 笑之力(소지력) : 웃음의 힘. 攀緣薔薇(반연장미) : ‘攀...

  • 장마, 조영수

    장마 조영수 하느님도 우리 엄마처럼 건망증이 심한가 보다 지구를 청소하다가 수도꼭지 잠그는 걸 잊어버린 모양이다 콸콸콸콸, 밭에 물이 차서 수박이 비치볼처럼 떠오르고 꼬꼬닭도 알을 두고 지붕 위에서 달달 떨고 새로 산 내 노란 우산도 살이 2개나 부러졌는데 아직도 콸콸콸콸 하느님, 수도꼭지 좀 잠궈 주세요 [태헌의 한역] 霖雨(임우) ...

  • 사랑할 때는, 윤준경

    사랑할 때는 윤준경 사랑할 때는 불도 끄지 못했네 사랑할 때는 잠도 들지 못했네 사랑할 때는 꽃도 못 보고 사랑밖에는 아무것도 못했네 사랑 엎지를까 봐 모로 눕지도 못했네 뒤도 돌아보지 못했네 그대만 보고 가다가 넘어진 줄도 몰랐네 [태헌의 한역] 愛君時(애군시) 吾愛君時不熄燈(오애군시불식등) 吾愛君時不成睡(오애군시불성수) 吾愛君時不看花(오애군시불간화) 愛...

  • 밤기차, 안상학

    밤기차 안상학 칠흑 같은 밤 그대에게 가는 길 이마에 불 밝히고 달리는 것은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멀리서 기다리는 너에게 쓸쓸하지 말라고 쓸쓸하지 말라고 내 사랑 별 빛으로 먼저 보내는 것이다 [태헌의 한역] 夜間列車(야간열차) 漆黑夜中向君路(칠흑야중향군로) 額上架燈力飛馳(액상가등력비치) 此決非是路不熟(차결비시로불숙) 君在遠處待人兒(군재원처대인아) 唯願吾君...

  • 강물, 오세영

    ​강물 오세영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沼)에선 쉴 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태헌의 한역] ​江水(강수) 切莫只看前方進(절막지간전방진) 江水逢壁轉身行(강수봉벽전신행) 切莫躁急亦促急(절막조급역촉급) 瀑布激流至沼平(폭포격류지소평) 無...

  • 연잎, 문근영

    연잎 문근영 살랑거리는 연못의 마음 잡아 주려고 물 위에 꽂아놓은 푸른 압정 [태헌의 한역] 蓮葉(연엽) 淵心蕩漾(연심탕양) 欲使靜平(욕사정평) 水上誰押(수상수압) 靑綠圖釘(청록도정) [주석] * 蓮葉(연엽) : 연잎. 淵心(연심) : 연못 한 가운데, 연못의 마음. / 蕩漾(탕양) : (물결 따위가) 살랑거리다. 欲使(욕사) : ~로 하여금 …하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