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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 두고 집 나갔다가…
보상금 내놓으라며 20년 만에 찾아온 엄마
고 구하라 /사진=한경DB

고 구하라 /사진=한경DB

기구한 씨와 석을녀 씨 부부는 딸 하나와 아들 둘희를 두고 있었습니다. 기구한 씨의 경제적 무능력으로 부부간에 불화가 심했고, 석을녀 씨는 아들 둘희가 젖먹이일 때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았네요. 기구한 씨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해서 자녀들에게 근근이 생활비만 보내주다가 딸 하나 씨가 고등학생, 아들 둘희 씨가 초등학생일 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하나 씨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소녀가장으로 직접 생계를 꾸려야 했지요. 이들 남매의 삶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다행이라면 동생 둘희 씨가 운동선수로서 소질이 있다는 겁니다. 체육특기자로 명문대에 입학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누나 목에 걸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할 정도로 속도 깊었습니다. 하나 씨는 동생의 뒷바라지에 전력을 쏟았구요.

그런데 하나 씨의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일이 발생했어요. 둘희 씨가 대학에 입학한 첫 여름방학에 지방으로 전지훈련을 갔다가 숙소에 화재가 발생하여 사망한 겁니다. 숙소인 리조트를 운영하던 회사가 지급한 손해배상금 및 소속 대학교에서 지급한 사망보상금을 합해서 약 4억원 정도의 돈이 기하나 씨에게 전달됐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20년 만에 친모 석을녀 씨가 찾아왔습니다. 보상금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변호사에게 법률상담을 해보니 둘희 씨의 사망보상금에 대해 누나인 하나 씨는 상속권이 전혀 없고, 친모가 100% 상속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과연 하나 씨는 사망보상금 4억원을 모두 석을녀 씨에게 빼앗겨야 하는 건가요?

[그림 - 이영욱]

[그림 - 이영욱]

"부모가 양육의무 불이행했어도 상속결격사유 아니다"
둘희 씨의 사망에 따른 보상금 4억원은 둘희 씨가 남긴 상속재산이지요. 민법상으로 상속 1순위는 직계비속, 2순위는 직계존속, 3순위는 형제자매입니다. 선순위 상속인이 있는 경우, 후순위 상속인에게는 상속권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둘희 씨가 남긴 보상금에 대해서는 직계존속(2순위)인 친모에게만 상속이 이루어지고, 형제자매(3순위)인 하나 씨는 전혀 상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구하라 씨 사건에서 친오빠가 상속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선순위 상속인인 구하라 씨 아버지가 상속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식에 대한 양육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자식의 사망 뒤 그 재산을 상속받는게 합당하냐는 겁니다. 하지만 현행 민법상으로 상속결격사유는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부모자식 간에 양육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상속권이 박탈되지는 않아요.

이에 대해서 그동안 꾸준히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헌법재판소는 민법에서 부양의무 불이행을 상속결격사유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했습니다.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인데, 이를 상속결격사유로 본다면 오히려 법적 분쟁이 빈번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헌재 전원재판부 2017헌바59, 2018. 2. 22., 위헌]

심판대상조항은 일정한 형사상의 범죄행위와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행위 등 5가지를 상속결격사유로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속인의 상속권을 보호함과 동시에 상속결격여부를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기 위함이다. 부양의무의 이행과 상속은 서로 대응하는 개념이 아니어서, 법정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상속인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법정상속인이 아닌 사람이 피상속인을 부양하였다고 하여 상속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를 상속결격사유로 본다면, 과연 어느 경우에 상속결격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워 이에 관한 다툼으로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하여 상속관계에 관한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저해된다.
친모에게 밀린 양육비 지급을 청구하는 방법 있어
석을녀 씨가 가출하고 기구한 씨까지 사망한 뒤에 기하나 씨는 자신과 동생의 생계를 직접 책임져 왔어요. 친모 석을녀 씨는 20여년 간 자녀에 대한 양육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으니 자녀들에게 밀린 양육비 채무가 있는 셈입니다. 기하나 씨는 고등학교까지 그만두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기둘희 씨를 직접 부양하였으니, 동생의 양육에 따른 비용을 석을녀 씨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위와 비슷한 사건에서 법원이 친모에게 양육비 지급의무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남편 A씨와 이혼한 후 32년간 연락도 없이 지내던 친모 B씨가 소방공무원이었던 딸의 사망 후 유족급여와 사망급여 등 8000만원이 넘는 돈을 가져가자, 자녀를 혼자 양육한 A씨가 B씨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1심법원은 A씨와 B씨의 협의이혼 시점부터 자녀가 성년에 이르기까지 B씨가 부담하지 않은 양육비를 7700만원으로 산정했습니다.

하지만 양육비청구로 상속받는 금액을 줄이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아래에서 살펴보는 구하라 씨의 경우와 같이, 상속재산이 수십억 원 이상이 되는 경우에는 양육비 수천만 원을 차감해봐야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른바 '구하라법' 입법진행상황
양육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자식의 사망 뒤 상속을 받아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상속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명 아이돌 가수였던 구하라 씨 사건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구하라 씨의 친모가 20여 년 전 가출해서 자식들을 나몰라라 하다가, 구하라 씨가 사망한 뒤 수십억 원에 이르는 부동산 매각대금의 배분을 요구하면서 소송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공무원의 경우에는 개선입법이 마련되었습니다. '공무원 구하라법'이라 불리는 「공무원재해보상법」과 「공무원연금법」이 통과되어 시행 중입니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재해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이 사망한 경우, 양육책임이 있는 부모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심의를 거쳐 부모에게 급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일반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국민 구하라법'은 유감스럽게도 아직 없습니다. 법무부는 2021년 6월에 「상속권 상실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민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자녀 본인이나 그 유가족이 양육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시키는 제도입니다.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양육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무책임한 부모가 자녀 사망 후 그 재산을 상속받는 부조리한 모습을 더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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