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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처럼 유언장 작성하면 안될까
워드로 유언장 작성하고 출력해서 도장 날인했는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여든을 바라보는 최신척 씨는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메일과 SNS도 매일 빠짐없이 체크하고, 휴대폰도 항상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꿉니다. 유언장도 촌스럽게 손글씨로 적을 것이 아니라, 스마트하게 컴퓨터로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유언장을 워드로 작성해서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한 후 변호사에게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방법을 생각했네요. 하지만 이내 접기로 했습니다. 모 정치인이 사망 전에 컴퓨터에 유언장을 저장해놓았다가 불필요한 의혹과 음모론이 판을 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컴퓨터 파일은 시간설정을 바꾸는 방법으로 날짜 조작이 아주 쉽습니다.

그래서 워드로 유언장을 작성한 다음 프린터로 출력했습니다. 유언내용 전문, 작성연월일, 이름, 주소를 빠짐없이 적은 후 출력해서 인감도장을 날인하고 인감증명서까지 첨부했지요.

그런데 이 유언장을 본 자문변호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듭니다. 유언장이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겁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그림 - 이영욱

그림 - 이영욱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인정받으려면…모든 내용 직접 써야
계약서 등 대부분의 법률문서는 워드로 작성한 다음, 출력해서 도장을 날인하거나 서명을 합니다. 이러한 법관행에 비춰보면 워드로 작성한 유언장을 무효로 볼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유언장은 일반적인 법률문서와는 다릅니다. 유언자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법적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유언자가 사망한 뒤에는 그 진위를 확인해줄 수 없어요.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유언자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유언자가 사망한 뒤에 누군가가 마음대로 워드로 작성해서 유언자의 도장을 찍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이런 이유로 워드로 작성한 유언장은 위조나 변조의 위험이 크다고 봐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법이 바뀔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인정받으려면, 유언자가 모든 내용을 손글씨로 직접 써야 합니다.
워드 유언장, '비밀증서' 요건 갖추면 효력 있어
워드로 작성한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받으려면 「비밀증서」의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유언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유언을 비밀로 하고 싶을 때, 이 방식에 의해 유언장을 작성합니다.

유언장에 유언의 취지와 유언자의 성명을 기재하고 봉인·날인한 다음, 2인 이상의 증인 앞에 제출해서 자신의 유언장임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봉서 표면에 제출한 날짜를 기재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각 날인해야 합니다. 기재된 날로부터 5일 이내 법원 또는 공증인에게 제출해서 봉인의 확정일자까지 받아야 합니다.
민법

제1069조(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①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필자의 성명을 기입한 증서를 엄봉날인하고 이를 2인 이상의 증인의 면전에 제출하여 자기의 유언서임을 표시한 후 그 봉서표면에 제출연월일을 기재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여야 한다.
② 전항의 방식에 의한 유언봉서는 그 표면에 기재된 날로부터 5일 내에 공증인 또는 법원서기에게 제출하여 그 봉인상에 확정일자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민법의 내용과 같이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요건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2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증인이 1명뿐인 경우에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유언장에 기재된 날로부터 5일 내에 법원이나 공증인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5일이 지나서 제출해도 효력이 없고 유언장을 다시 작성해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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