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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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나이인 30대 초반의 요절남 씨는 아내 성급희 씨와의 사이에 다섯 살된 딸을 두고 있습니다. 아내 뱃속에는 이제 4개월 된 태아도 있습니다. 요절남 씨는 야근를 마치고 운전하여 집에 돌아오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맞은편 트럭과 충돌하여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남편의 죽음 앞에 아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사회초년생이고 아내는 전업주부라 모은 재산도 없었네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남편이 고교 동창의 성화에 못 이겨 가입해둔 생명보험에서 사망보험금 7억원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성급희 씨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보험금 7억원 정도로 아이 둘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요.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기보다는 이미 태어난 다섯 살 아이라도 제대로 키우는 편이 낫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중론이었어요. 성급희 씨는 어렵게 고민한 끝에 결국 뱃속의 아이를 낙태했습니다. 낙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시댁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남편 사망 후 낙태한 아내, 7억 보험금 한 푼도 못 받는다 [정인국의 상속대전]

낙태하지 않았다면…성급희씨 상속 1순위

상속에 있어서 배우자는 항상 1순위에 해당하고, 직계비속이 있으면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공동상속인이 됩니다. 상속비율은 배우자가 1.5이고, 직계비속이 1입니다. 직계비속(망인의 자녀)이 있으면 직계존속(망인의 부모)에게는 상속권이 없습니다.

아이를 낙태하지 않았다면 아내 성급희 씨, 다섯 살된 딸, 뱃속의 태아, 이렇게 3명이 요절남 씨의 상속인이 됩니다. 태아는 상속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봅니다.

상속비율을 따져보면 사망보험금 7억원에 대해서 성급희 씨가 3억원, 다섯 살 딸과 뱃속의 태아가 각각 2억원씩 상속을 받게 됩니다. 성급희 씨는 남편 요절남 씨의 상속인이자, 두 아이의 친권자로서 보험금 7억원을 모두 관리하며 자식 둘을 키울 수 있습니다.

며느리의 낙태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노발대발했습니다. 며느리가 뱃속의 태아에게 보험금을 빼앗기기 싫어서 낙태를 했다는 겁니다. 시어머니의 이런 비난은 물론 성급희 씨의 입장에서는 펄쩍 뛸 노릇이었습니다. 자식이 하나이건 둘이건 부양의무는 오롯이 엄마인 자신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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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로 달라진 상속관계…성급희씨 상속권 박탈

하지만 낙태로 인해 성급희 씨는 상속권이 박탈됩니다. 우리 민법에서는 자신과 동순위의 상속인을 살해한 상속인은 상속결격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뱃속의 아이를 낙태한 성급희 씨는 자신과 동순위의 상속인을 고의로 살해한 것으로 평가되는 겁니다.

성급희 씨가 상속에서 배제된 이후의 상속관계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요절남 씨의 다섯 살 된 딸이 1순위 직계비속으로서 보험금 7억원을 단독으로 상속받습니다. 일단 성급희 씨는 다섯 살 된 딸의 친권자로서, 딸이 상속받은 보험금 7억원을 관리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민법

제1004조(상속인의 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1.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대법원 1992. 5. 22., 선고, 92다2127, 판결]
태아가 호주상속의 선순위 또는 재산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경우에 그를 낙태하면 민법 제1004조 제1호 소정의 상속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상황에 따라서 성급희 씨는 딸의 보험금을 관리할 권한마저도 상실할 수 있습니다. 성급희 씨가 뱃속의 태아에게 보험금을 나눠주기 싫어서 태아를 낙태한 것이라는 시어머니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입니다. 성급희 씨의 딸에 대한 친권이 상실될 수 있습니다. 딸에 대한 친권상실로 인해 딸의 보험금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마저도 상실되는 것이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급희 씨는 뱃속의 태아를 낙태할지 결정하기에 앞서 주변 지인의 의견만 구할 것이 아니라 법률전문가의 자문을 구했어야 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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