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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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가 건물주를 상대로 권리금소송을 하려면 '권리금을 내고 들어올 새로운 세입자'를 건물주에게 소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새로운 세입자를 소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 소개 없이 권리금 소송이 가능한 사례도 있습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 제1항은 임대인(건물주)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임대인은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로부터 권리금을 지급받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고 규정한 것입니다.

이 조항에서 주목할 대목은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로부터’ 입니다. 권리금을 받고 나갈 세입자는 권리금을 내고 들어올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서 건물주에게 소개해야 하는 것이 법률요건이라는 뜻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신규세입자를 건물주에게 소개해야 권리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물주가 정당한 이유 없이 신규세입자가 되려는 사람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음을 확정적으로 표시한 경우입니다.

세입자가 신규세입자를 소개하지 않았더라도 건물주를 상대로 권리금소송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8다252823, 252830 판결)가 있습니다.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건물주 A는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세입자 B에게 계약갱신을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매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B는 A의 태도 때문에 신규 세입자를 주선하지 못했고 5년 동안 운영해온 매장의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가 막막해졌습니다.

결국 권리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B는 건물주에게 권리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A는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인 '신규세입자가 없었다'라고 맞섰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B가 신규 세입자 소개 없이 A를 상대로 권리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느냐 였습니다.

원심은 A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세입자 B가 건물주 A에게 새로운 세입자를 주선한 바가 없어 B의 권리금 회수기회가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세입자 B의 권리금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즉 법조문에 따른 법률요건인 '새로운 세입자를 건물주에게 소개'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B가 낸 권리금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새로운 세입자를 주선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원심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A가 B에게 이 사건 임대차기간 만료 후에는 자신이 이 사건 상가를 직접 이용할 계획이므로 신규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B의 신규임차인 주선을 거절하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전제했습니다.

이어 "이러한 경우 B에게 신규임차인을 주선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B는 실제로 신규임차인을 주선하지 않았더라도 임대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의무 위반을 이유로 A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건물주 때문에 신규임차인을 소개할 수 없는 경우에까지 B에게 법률요건인 '소개'를 강요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권리금을 받으려는데 건물주가 '신규세입자를 소개해도 임대차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할까요.

우선 건물주가 신규세입자 소개를 거절하는 의사가 분명한지 재차 확인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증거자료로 녹취록이나 내용증명서 등 건물주의 거절의사를 문서로 남겨두는 게 좋습니다. 이 후 권리금소송을 제기해서 모아두었던 증거자료들을 활용하면 됩니다. 재판에서는 '건물주 때문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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