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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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 본색'

베이징(北京)은 중국의 수도입니다. TV에 자주 등장하는 천안문광장과 만리장성은 물론 자금성과 이화원 등 유명 유적지가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인구만 하여도 20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매머드 국제도시입니다. 중국의 유명 베이징대학(北京大學 )과 칭화대학(淸華大學) 그리고 인민대학(人民大學)이 베이징에 있어, 전국의 수재들이 베이징으로 몰려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베이징에는 중국공산당의 중앙 영도들이 옛 고궁 내 중남해(中南海) 주변에 거주합니다. 때문에 항상 천안문 광장 주변에는 경계가 삼엄합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열리는 공산당의 대표자 회의 때에는 베이징 진입이나 통제로 불편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당연한 일로 받아들입니다.

베이징 사람들은 중국 수도에 거주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부자보다 문인이나 가난한 학자를 대접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가난하고 청렴한 지식인은 결국 공직에서 성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은근히 선민의식을 갖고 지방 사람들을 깔보기도 합니다. 택배나 청소 등 허드렛일은 당연히 베이징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온 품팔이들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베이징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봉건시대부터 권력의 심장부 주변에 머물러 있었고,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전문 정치인에 버금가는 지식과 정보를 배경으로 자기 나름의 독특한 정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개혁개방의 영향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적어졌다고 하나, 여전히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식은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이징 사람들은 상하이(上海)나 광둥(廣東)과는 달리 정치인의 동향에 매우 민감하고, 정치인을 존중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일지라도 자기의 관계망(關係網)에는 정부 고위직과 연결되는 관계(關係)를 하나 둘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친구를 속이는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친구를 속이거나 기회주의적인 행동이 관계망에 알려져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란 낙인이 찍히면, 인적 네트워크에서 추방되고 오명은 평생을 가기 때문입니다.

봉건시대부터 베이징은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사업을 하는 관상(官商)이 발달한 곳입니다. 관상은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먼 정치 권력과 유착 관계로 이루어지는 정경유착의 비즈니스를 말합니다. 관상은 현재에도 번성하고 있어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거기에 올인하는 것도 매우 위험합니다. 정치적 힘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잘못되면 독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단기적인 이익을 얻기보다는 정치 권력과 장기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한 통으로 움직이는 계획경제의 나라입니다. 중국과의 비즈니스를 하려면 우선 정치로 접근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피하는 데 유리합니다. 중국의 비즈니스 기회와 리스크는 정치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나친 정치적 성향은 나중에 비즈니스에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중앙 정부의 인허가가 필수인 프로젝트는 베이징을 먼저 직접 접촉하는 것이 좋습니다. 북경현대자동차, 삼성반도체나 SK하이닉스 반도체 사업도 모두 중앙정부의 허가로 이루어진 사업들입니다. 지방정부나 지방의 기관에 위임하였다고 하는 인허가 사항도, 대부분 중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앙의 내락이 있어야 지방 정부나 기관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중앙을 통하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을 잘 활용하면 시간과 복잡한 절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베이징 사람들이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인간관계인 관시(Guanxi)를 중시합니다. 중국인의 체면은 관시의 핵심 중의 하나입니다. 체면을 중시하다 보면 실속이 없고 과장과 허풍이 심합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떠드는 것도 베이징 사람들입니다. 베이징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고 체면을 차리는 태도는 필수적입니다. 약간의 허세와 배짱은 베이징 사람들과의 비즈니스에서는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베이징에는 우수한 대학과 연구기관 그리고 중앙국영기관이 많아 전국에서 인재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베이징 중관촌(中關村)은 베이징대학과 청화대학이 있는 대학가에 자리하고 있어, 중국의 정보통신과 인터넷, IT산업의 R&D 센터, 유망 스타트업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중국의 실리콘밸리입니다. 중국의 첨단산업 분야 진출이나 파트너를 찾는다면 중관촌을 노크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베이징이 문화도시답게 지적 수준과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많습니다. 베이징 ‘798 예술구’는 화랑과 예술가들이 많은 지역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798 예술구’의 자리는 원래 군대의 전자 공장 지구였는데 폐공장을 리모델링하여 문화예술중심지로 태어난 곳입니다. 이곳은 미래 중국 문화 및 예술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중국을 이해하려면 우선 베이징을 연구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최근 ‘역사결의’에서 나타나듯 실용보다 이념을 중시하는 인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앞으로 인적 네트워크인 관시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여, 고급 인재와 고위정치인들이 집중 거주하는 베이징은 더욱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직자들과 정치가들이 중국 공산당의 베이징 핵심인사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한국인으로 중국 고위층에 절친한 친구를 가진 인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상시에 중국 고위층과 전화 통화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해안을 중국어선들이 침범하여 불법으로 조업해도 정부 차원의 강력한 단속이나, 중국 정부에 대해 강하게 항의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3불 정책’ 같은 굴종의 태도로는 우리가 가진 것조차 지키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공직자들과 정치인은 중국과 맞짱을 뜰 수 있는 배짱과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존심과 이익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조평규 중국연달그룹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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