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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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약 34년간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했던 조선은행은 해방 후 미 군정청 소유로 넘어갔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되었습니다. 이후 환은통합과 한국은행법을 통해 1950년 6월12일에야 한국은행은 정식으로 업무를 개시할 수 있었죠. 저번 칼럼에서 한국은행의 설립과정에 대해 이해했다면 오늘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했던 금은괴의 행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전쟁은 한국은행이 정식으로 업무를 개시한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발발했습니다. 당시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금은괴의 행방은 경제 생태계 유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영역이었습니다. 당시 주한 외교관들이 한국은행 외국부에서 외화예금 65만달러를 인출한 뒤 출국을 시도하면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사실상 바닥을 드러내는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일제 해방 당시 한국은행은 금 1.3톤과 은 18.5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미발행은행권 105여억원까지 보유 중이었죠. 이 금은괴는 화폐와 금융질서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산이었습니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당시 구용서 한국은행 총재는 군 트럭을 이용해 한국은행 지하 금고에 있던 금괴 1.1톤, 은괴 2.5톤을 진해 해군 경리부 창고로 반출합니다. 이전 일본에서 인쇄된 조선은행권 3억원을 조선으로 공수해와 미군에 인계했던 경험에 따른 것이죠.

이후 한국은행 직원들이 서울에 남아 금융기관들의 철수를 도왔고 북한군이 서울에 진입하자 한강 인도교를 건너 철수합니다. 이들은 임시정부의 이동에 따라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금은괴와 함께 신라 금관 등의 국보 124점까지 인수해 진해 해군 경리부로 이관합니다.

금은괴들은 뉴욕연방준비은행의 금고로, 국보들은 뱅크오브아메리카로 운송됩니다. 재밌는 사실은 당시 뉴욕연방준비은행과 미리 조율 없이 일련의 일이 이뤄졌단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연방준비은행에 물건을 잘 보관해 달라는 일방적인 공문을 보낸 뒤, 미 해군 장군을 통해 금은괴를 전달했다고 하죠. 한국전쟁이 종결된 후 국보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뉴욕으로 보내진 금은괴는 1955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에 가입하면서 출자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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