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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시내.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의 말입니다. 저자는 프랑스에서는 이미 실패한 주택구조인 아파트에 왜 한국인들이 저렇게 열광하는지 의아해서 박사논문 주제를 한국의 아파트로 정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단지개념의 아파트인 마포아파트가 완공되고 50여년, 본격 강남개발이 시작된 이후 30여년 만에 아파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문화가 되었습니다. 통계청의 “2020년 주택소유통계”에 의하면 총 주택 수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62.9%까지 늘었습니다. 일단 양적으로는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만합니다.

아파트 단점, 주택가격 변동성 크고 노후화 문제

아파트가 압도적인 주거형태로 정착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먼저 단점부터 이야기해봅시다. 첫 번째로 동질적인 주택유형으로 인해 주택가격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파트는 가격을 알기 쉽습니다. 단독주택이 주거형태의 대부분의 유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외국은 개별주택의 가치평가가 쉽지 않습니다. 가격변화가 그리 빨리 반영되지 않으나 우리는 동질적인 상품이므로 아주 쉽게 반영이 됩니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는 방향(하락 또는 상승)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진폭(몇 %)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오르면 더 크게 오르고 떨어지면 더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점은 지어진 연도가 20~30년이라는 기간 동안 집중되어 노후화에 따른 재건축, 리모델링 등의 필요성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우리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이주수요 등 신규수요도 발생할 수 있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떨어지고,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이 지지부진하면 현재와 같이 재건축사업 이슈에 따른 아파트 가격 강세가 폭발할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경기도의 아파트 밀집지역.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의 아파트 밀집지역.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 번째는 기존의 아파트가 전용면적 30평 이상의 중대형 위주로 되어있기 때문에 향후의 인구구조나 가구원 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사실 아파트는 외국에서는 거쳐 가는 일시적인 주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형 아파트를 많이 짓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아파트가 고급 주거형태로서 대형 아파트가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2018년 통계청에 의하면 99.0㎡(30평) 이상의 아파트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1%나 됩니다. 부동산지인에 의하면 2021년 아파트 입주물량에서 30평 이상의 비중은 53.0%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아파트, 다른 자산에 비해 하락폭 적어

하지만 이러한 단점과 함께 아파트공화국이 가지는 장점도 많습니다. 아파트가 가지는 장점이 많다면 인구구조 변화에 의해 주택가격이 하락할 때 우리는 외국과는 다른 궤적(軌跡)을 그릴 것이란 기대입니다. 첫째 아파트는 단독주택과는 다르게 원가가 많이 소요되는 상품입니다. 전체비용에서 건축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말입니다. 세대 당 대지지분이 적기 때문에 땅 값은 얼마 되지 않는데 반해 건축비가 전체비용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즉 재조달 원가가 높아 가격하락의 하방경직성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단독주택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입니다.

부동산시장의 가격하락이 본격화되더라도 땅 값이 전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단독주택과는 다른 가격하락 추이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에도 자산버블이 왔을 때 땅값이 가장 많이 떨어지고 그 다음은 주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파트와 유사한 맨션은 가장 적게 떨어졌고, 빠르게 고점을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해외의 사례를 고려하면 아파트가 가지는 문제점과 함께 자산 가치 측면에서 유리한 점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사중인 아파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사중인 아파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둘째는 아파트는 지속적으로 진화한다는 겁니다. 지금의 아파트와 30년 전 지은 아파트는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철골조냐 철근콘크리트 구조냐 등 복잡한 공학적 상식을 제외하더라도 30년 전의 아파트에 비해 지금의 아파트가 훨씬 잘 지어졌다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최근 신규 아파트에 대한 인기가 높고, 분양시장이 호황인 이유는 이러한 공법상의 차이도 존재합니다. 이에 비해 단독주택은 사실 건축기법의 발전을 크게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30년 전의 단독주택과 지금의 단독주택이 아파트만큼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면적에 많은 인구 수요 가능…주거형태도 진화

단독주택이 대부분의 주택유형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에서는 새로운 주택에 대한 수요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냥 고쳐 써도 큰 문제가 없을 뿐더러 주택 가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파트의 경우는 다릅니다. 고쳐 쓰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눈부시게 발전하는 새로운 건축기법이 적용되다보니 신규 아파트가 공간구조면에서는 월등히 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신규주택에 대한 대체수요가 꾸준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기존의 아파트와 연립․단독주택 등에서 새로운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수요로 인해 금융위기와 같은 예상 못한 충격만 없다면 아파트 분양시장의 호황은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분양시장의 호황이 전체 아파트시장을 이끌면서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를 막는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는 도심에 좁은 면적에 많은 수의 세대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와 같은 대단지의 아파트를 통한 신도시를 건설할 때도 인구밀도 및 용적율을 낮게 적용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신도시인 다마뉴타운(多摩ニュータウン)의 경우 인구밀도가 90~100/ha로 우리의 분당신도시(170~190/ha)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특히 구릉지 등 기존의 자연환경을 유지하면서 신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이렇게 건설된 일본의 신도시들은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하지만 고령화에 따른 직격탄을 벗어나기는 어려웠습니다. 우리에 비해 너무 넓고 멀며 경사가 심한 생활환경은 노인들에게는 불편 그 자체였습니다.
일본 도쿄의 주택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도쿄의 주택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신도시의 몰락은 노인인구의 급증과 함께 신도시 개발방식의 차이로 인한 요인도 큽니다. 작은 면적에 대규모의 세대를 입주시키는 우리의 개발방식은 외국에서 보기에는 아파트공화국이라 손가락질 받을 수는 있습니다. 고령화시대의 콤팩트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압축도시(compact city)에 더 가깝습니다. 이러한 고밀도 도시개발방식은 부동산시장의 가장 큰 충격요인으로 작용할 고령화를 안정적으로 흡수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수급 조절 유리해 집값 조절 가능

네 번째는 수급조절에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향후 부동산시장의 침체 가능성이 대두되면 아파트 단지의 인허가나 착공시기를 조정하면 물량폭탄의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씩 지어지는 단독주택은 조정이 쉽지 않습니다. 실제 부동산경기가 호황일 때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이런 정책을 사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낡은 노후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이 아니라 노인복지시설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LH공사와 유사한 조직으로 일본의 UR(도시재생기구)이 있는데 이들이 관리하는 노후 아파트 중 일정 세대나 동은 철거를 통해 공원이나 노인복지시설로 변경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이미 주택공급이 많아 빈집(공가) 등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일본 총무성의 예측으로 2033년에는 빈집이 2,150만채로 예상되는데 3채 중 1채가 빈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택수급상황에서 기존의 노후아파트를 재건축해서 공급하여도 들어와 살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 고령화시대에 맞는 시설로 바뀌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파트 공화국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잘 살펴보면 장점도 꽤 있습니다. 현재 우리와 같은 주거형태와 유형을 가진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아파트공화국이 향후 어떻게 변화되어갈 것인가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주거형태를 가진 선진국의 몇몇 사례를 가지고 부동산시장을 해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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